[연휴 민심 대해부-경제 분야] "명절 특수 예년보다 못해…中企·전통시장 살릴 대책 절실"

입력 2017-10-10 00:05:01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9일 대구 서구 염색공단 내 진호염직에서 근로자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다. 염색공단 내 대부분 기업은 추석 연휴를 일찍 끝내고 이날부터 공장을 가동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9일 대구 서구 염색공단 내 진호염직에서 근로자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다. 염색공단 내 대부분 기업은 추석 연휴를 일찍 끝내고 이날부터 공장을 가동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추석 연휴가 끝나고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온 시민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역대 최장인 추석 연휴(10일)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경기불안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돈이 돌지 않는다며 울상이다. 직장인들은 불안한 앞날 걱정으로, 취업준비생들은 좁은 취업문과 씨름하며 연휴를 보냈다. 기업인들은 안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수익성이 낮아지고, 밖으로는 중국의 사드 보복, 한미 FTA 재협상 등으로 수출시장에 비상이 걸렸다며 걱정이다. 이들은 "먹고살기가 너무 힘이 들다. 여야가 힘을 합쳐 경제위기를 극복해 주기 바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바닥 경기는 벌써 겨울

윤금향 공인중개사는 유례없는 부동산 경기 한파로 걱정이 태산이다. 윤 씨는 "예년에는 추석이 지나면 거래가 시작되는데, 올해는 거래 문의 전화가 뚝 끊겼고 급매 위주 거래 문의만 드문드문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한 달에 한 건의 거래도 없을 정도여서 부동산 중개 수입이 평소 대비 30%가량으로 줄었다. 대출 규제 제한을 일부 완화하는 등의 대책으로 실수요자와 공인중개업자들의 숨통을 틔어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말했다.

손현봉 의성전통시장 상인회장은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을 위한 정책 개발을 주문했다. 손 회장은 "하루빨리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임명돼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을 살릴 수 있는 정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소상공인, 전통시장 담당 부서가 중소벤처기업부 내에서 가장 힘 있는 실국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규홍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 중도매인연합회장은 "올해 추석 연휴가 길었던 탓에 명절 특수가 오히려 예년보다 못했다. 대형마트 등에서 이번 추석 연휴가 길어지면서 예년보다 물건이 덜 팔릴 것으로 생각해 구매해가는 물량을 줄인 것 같다"면서 "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으로 타격을 입은 농수축산업계가 회복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예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안경환(58) 씨는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라 식당 운영이 힘들다. 정부 차원에서 농산물 가격에 대한 개선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한미 FTA도 재협상한다는데 이 상태로라면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지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안 씨는 "예천'안동지역은 경북도청 신도시 특수로 지가(地價)가 이전보다 수십 배 상승하는 바람에 새로운 사람이 이주해 올 수 있는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졌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인구가 빨리 늘어나 돈이 순환돼야 하는데 귀농'귀촌인과 영세 자영업자가 지역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혜택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리운전기사 박성식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목요일이나 금요일 밤이면 콜을 받고 이동하느라 바빴지만 요즘에는 멍하니 기다리는 시간이 늘었다. 손님이 적은 주말에는 자정을 조금 넘기면 콜이 끊겨 일찍 집에 들어오는 날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박 씨는 그러나 "물가는 계속 치솟는 느낌이다. 추석을 앞두고 농산물 가격이 올라 햅쌀과 과일을 사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됐다. 기름값이나 생필품의 경우 아낄 수도 없는데 가격이 오르니 걱정이 많다"고 했다.

◆좁은 취업문'빠듯한 가계

취업준비생, 직장인은 저마다 좁은 취업문과 고용 환경을 걱정했다.

취업준비생 방상혁 씨는 경북의 한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취업 준비 중이다. 올해는 공채하는 회사마저 눈에 띄게 줄었고, 나고 자란 대구에서 취업하고 싶은데 대구에는 일자리가 없다.

방 씨는 "한 달에 30만원 가까운 수강료와 책값을 내며 토익 학원에 다니고 있다. 인'적성 시험 준비를 위한 독서실 비용과 생활비 등도 10만원 넘게 나간다. 부모님 노후 자금을 받아 쓰고 있는 셈인데 죄송스러워 단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학원 수강료가 오른다고 하는데 아르바이트를 더 늘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준비생 생활이 길어지니 삶에 여유도 사라지고 점점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내년까지 해 보고 안 되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공무원시험 준비생인 김동주 씨는 올해 추석 연휴 대부분을 아르바이트하는 독서실에서 일하며 바쁘게 보냈다. 김 씨는 그동안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올해부터 소방공무원으로 바꿨다. 정부에서 소방공무원 채용 인원을 늘린다고 해서다. 김 씨는 "이미 취업한 친구들을 보면 나만 뒤떨어진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렇다고 일반 기업에 취업하고 싶지는 않고 지금 더 고생하더라도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물류업체를 운영하는 홍원헌 씨는 "우리 회사에 지원한 한 구직자는 수백 곳에 지원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내 자녀들 역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어 취업난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청년들이 기를 펼 수 있도록 취업문이 넓어지고 중소기업의 부족한 처우도 골고루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주부 김성미 씨는 "추석 연휴 열흘 동안 어떻게 하면 지출을 줄일지가 최대 고민이었다. 예년 명절보다 외식비 등으로 식비가 갑절이나 더 들었다. 또 해외는커녕 국내 여행도 황금연휴라 가는 비용이 휴가철 성수기 수준으로 오른 탓에 엄두를 낼 수 없었다"고 했다. 부업으로 산후도우미로 일한다는 그는 "저출산 영향 등으로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더라도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좋겠다"고 했다.

◆기업인 "수익성 악화"

"수출 납기를 맞추기 위해 추석 연휴에도 공장을 가동해야 했습니다. 임금의 1.5배에 해당하는 특별수당을 별도로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라 죽을 맛입니다."

역대 최장 연휴임에도 기업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긴 연휴로 회사 자금 사정이 곤란해질 것을 우려하며 마음을 졸이는 기업인들이 많았다. 안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수익성이 낮아지고, 밖으로는 한미 FTA'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수출시장에 비상이 걸렸다는 위기감도 높았다.

특히 내년부터 본격 인상되는 최저임금은 단연 화두였다. 추석 연휴 중인 지난 6일부터 생산시설을 가동했다는 정재호 ㈜초록들 대표는 "많은 기업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내년에 16% 오르고 후년에 또 오르면 그만 손을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너나없이 얘기했다. 기본급이 오르면 4대 보험, 퇴직금 같은 부대비용이 함께 올라 기업에 부담될 수밖에 없다. 근로자들 월급 올려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기업체 사정도 봐줘야 할 것 아닌가.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정책을 펴는 것 같다는 성토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의열 덕우실업 대표도 "중소기업 현장에서도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등이 큰 이슈였다. 명확한 시행 방안이 정해지지 않은 채 큰 틀부터 공개된 정책 탓에 현장에서는 내년 이후 큰 혼란이 올 것이라 우려하는 눈치다.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미 FTA 재협상과 사드 보복 등을 우려하는 지역 경제계의 목소리도 많았다. 경산산업단지 자동차 방진부품 전문업체인 ㈜에나인더스트리 신승동 부사장은 "한미 FTA 재협상 등 미국의 자국 보호무역과 중국의 사드 보복, 국내 경기의 침체 등 대내외적인 영향으로 매출은 감소하고 비용은 증가하는데 자금 수혈은 잘 되지 않으니까 주변의 많은 기업인들이 다들 어렵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을 잘 견뎌야 하는데 이 이·삼중고가 오래 지속되면 과연 뭘 해야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셌다.

윤광수 포항상공회의소 회장은 "지역기업들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자금 지원과 대출금리 대폭 인하, 신용대출 및 보증지원 확대, 저렴한 공장용지 공급 등이 필요하다. 대구경북이 당면한 현안 사업 등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도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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