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한글 덕분에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한글은 세계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

당대 유명한 언어·음성학자들 칭찬

IT시대 中·日은 한문 때문에 고생

한글 덕에 한국 문화적 첨단 나라 돼

광화문에 들를 일이 있는 한국인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누구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두 어른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침입하여 국가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충무공 이순신이 없었으면 이 나라를 누가 구할 수 있었을까. 사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오천 년 역사에 우뚝 서 있는 위대한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화문에 앉아 계신 세종대왕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방원의 거듭된 왕자의 난을 미워하는 사람들도 태종의 맏아들도 아닌 세종을 태자로 책봉하고 왕위에 앉힌 일은 격찬하며 이방원의 그런 용단을 가상타고 여기는 것이 확실하다.

세종은 명군 중의 명군이어서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외교, 군사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32년이나 훌륭하게 임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조선 왕조에 어쩌면 세종 같은 탁월한 인물이 태어났고 그런 인물에게 왕위가 주어졌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일이라고 하겠다.

각 방면에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중에도 세종이 정음청과 집현전을 두고 젊은 학자들을 양성하는 가운데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실은 세계사적 입장에서도 특이할 만한 놀라운 사실이라고 하겠다. 버팔로대학에서 훈민정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석연 교수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한 당대의 유명한 언어학자, 음성학자들로부터 "한글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동시에 아름다운 문자"라는 칭찬을 듣고 김 교수도 감동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많은 백성이 한문을 해독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불쌍히 여긴 세종이 연구와 고심 끝에 백성을 위하여 마련한 알파벳이 훈민정음인데 훈민정음은 1446년에 선포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571년 전의 일이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던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고 그 뒤에도 한글은 배우지 못한 아녀자나 쓰는 문자라는 천대를 면치 못하였다. 당시 지배계급의 의식 속에는 한글은 언문이었고 중국 글만이 진서로 인정되어 그들은 한문만을 전용하였다.

그토록 어렵게 출발한 한글이 그 자체의 실력 때문에 차츰 자리를 잡게 되었고 구한말에 내한한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성서가 한글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국한문을 혼용하다가 신구약 성서를 몽땅 한글로 번역하는 일이 선교사들의 공의회에 의해서 결정된 바 있었다. 그러므로 한글은 복음 전파의 주역을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

한글학회가 결성된 것은 일제가 기승을 부리던 1921년 12월 3일이었다. 순전히 한글을 연구하기 위하여 마련된 단체로서 장지영, 김윤경, 최현배, 이윤재, 권덕규, 신명균, 최두선, 이병기 등 15, 16명이 창립 회원이었다. 1927년부터 기관지인 '한글'이 발간되었고 1931년에는 학회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고치고 '한글'을 속간하였으나 일제 말기가 다가왔던 1942년에는 어학회의 회원들을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씌워 홍원경찰서에 수감하였다. 그들은 홍원감방에서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감옥에서 풀려난 최현배는 연희대학의 교단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진하여 미 군정청의 문교부 편수국장 자리에 앉았다. 그의 꿈은 어린 사람들이 읽는 모든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많은 반대와 방해를 무릅쓰고 대한민국의 초'중'고 교과서는 일단 한글로 편성되어 학생들은 한문시간에만 중국어를 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한국의 IT산업이 세계 으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글이 없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중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문에 시달리며 불필요한 고생을 많이 했을 터인데 한글 덕에 오늘의 한국은 문화적으로 첨단을 가는 나라가 되었고 한글의 공로는 말과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한국인이 전 세계를 향해 자랑할 수 있는 두 가지 중 하나가 한글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