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생산적인 한글날을 위하여

입력 2017-10-09 00:05:00

한글날만 되면 언론사에서는 으레('으례'가 아니다.) 외래어 사용, 청소년들의 비속어, 은어 사용, 누리꾼들의 한글 파괴에 관한 기사 한 꼭지씩을 꼭 쓴다. 기사의 공통점을 보면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10~30대 젊은 사람들의 언어 습관이다. 그들은 아주 나쁜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두었다가는 우리말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그들은 교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기사를 인터넷 기사로 접한 누리꾼들은 대부분 '꼰대 소리'로 생각하고 무시해 버리지만, 종이 신문으로 접한 50, 60대들은 크게 공감하면서 세상을 개탄한다.

모두 알고 있듯이 한글날은 현재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 중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원리로 만들어진 우리 한글을 기념하는 날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하고, 스마트폰 하나로도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모두 한글의 덕이다. 그러므로 한글날은 모든 국민들이 다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언론에서는 한글날만 되면 연례행사로 젊은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기사를 내다보니 한글날은 매우 불편한 날이 되어 버렸다.

한글날에 나오는 기사 중 상당수는 말한다고 해서 바뀔 리가 없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은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는 기사를 한글날에 낸다고 해서 은어가 없어질 리는 만무하다. 청소년들의 은어 사용을 개탄하는 기사를 쓴 기자들도 뒤돌아서면 "팩트 있어? 야마(핵심)가 뭐야?" 하고 자기들끼리의 은어를 사용한다. 은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독재자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강제적인 수단으로 말을 바꾸는데,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좋은 세상이 아니라 통제와 억압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한글날에 좀 더 의미 있고 생산적인 논의를 하려면 언론에서는 지금과 같은 기사들 대신 한글날을 어떻게 축제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휴대전화 타자 왕 선발대회가 사실은 한글날의 취지에 가장 맞는 행사이다.) 그리고 굳이 우리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1988년 개정 이후 30년이 된 현재의 어문 규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한 공론화를 제기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다. 현재의 어문 규정에는 30년이나 지나도 정착이 안 되는 '삐악삐악'('삐약삐약'이 아니다.), '늴리리' 같은 잘못 선정한 표준어들이 있다. 그리고 사이시옷 규정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 많고, '밤길'이 [밤낄]로 변하는 사잇소리 현상을 음의 첨가에 넣어서 학교 문법 교육에 혼란을 일으키는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모으는 계기로 한글날을 이용한다면, 한글날은 축제의 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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