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만 되면 언론사에서는 으레('으례'가 아니다.) 외래어 사용, 청소년들의 비속어, 은어 사용, 누리꾼들의 한글 파괴에 관한 기사 한 꼭지씩을 꼭 쓴다. 기사의 공통점을 보면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10~30대 젊은 사람들의 언어 습관이다. 그들은 아주 나쁜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두었다가는 우리말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그들은 교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기사를 인터넷 기사로 접한 누리꾼들은 대부분 '꼰대 소리'로 생각하고 무시해 버리지만, 종이 신문으로 접한 50, 60대들은 크게 공감하면서 세상을 개탄한다.
모두 알고 있듯이 한글날은 현재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 중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원리로 만들어진 우리 한글을 기념하는 날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하고, 스마트폰 하나로도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모두 한글의 덕이다. 그러므로 한글날은 모든 국민들이 다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언론에서는 한글날만 되면 연례행사로 젊은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기사를 내다보니 한글날은 매우 불편한 날이 되어 버렸다.
한글날에 나오는 기사 중 상당수는 말한다고 해서 바뀔 리가 없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은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는 기사를 한글날에 낸다고 해서 은어가 없어질 리는 만무하다. 청소년들의 은어 사용을 개탄하는 기사를 쓴 기자들도 뒤돌아서면 "팩트 있어? 야마(핵심)가 뭐야?" 하고 자기들끼리의 은어를 사용한다. 은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독재자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강제적인 수단으로 말을 바꾸는데,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좋은 세상이 아니라 통제와 억압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한글날에 좀 더 의미 있고 생산적인 논의를 하려면 언론에서는 지금과 같은 기사들 대신 한글날을 어떻게 축제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휴대전화 타자 왕 선발대회가 사실은 한글날의 취지에 가장 맞는 행사이다.) 그리고 굳이 우리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1988년 개정 이후 30년이 된 현재의 어문 규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한 공론화를 제기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다. 현재의 어문 규정에는 30년이나 지나도 정착이 안 되는 '삐악삐악'('삐약삐약'이 아니다.), '늴리리' 같은 잘못 선정한 표준어들이 있다. 그리고 사이시옷 규정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 많고, '밤길'이 [밤낄]로 변하는 사잇소리 현상을 음의 첨가에 넣어서 학교 문법 교육에 혼란을 일으키는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모으는 계기로 한글날을 이용한다면, 한글날은 축제의 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