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16년 근무 신화적 기록, 검사 출신 첫 3대 로펌 변호사
김경한 전 법무부장관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오래된 스크랩 북을 꺼내 보여주었다. 빛바랜 종이는 삭을 대로 삭아서 만지면 부스러질 정도였다.
아기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꺼낸 든 종이는 그가 40여 년 전인 1973년 대구지검 초임검사 시절 매일신문 '매일춘추'라는 칼럼에 1년간 고정 집필한 기사를 스크랩해 둔 것이었다. 대구경북 출신인데다가 생애 처음으로 쓴 칼럼기사라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지금껏 보관해 온 것이었다.
검사로서 바쁜 업무 중에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매주 원고 마감 일자가 돌아오곤 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회상했다.
어릴 적 그는 문학소년이었다.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숙부가 동경 유학 중 요절하는 바람에 후사를 잇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때 청상이 된 숙모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양어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면서 자연히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고 이것이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 활동으로 이어졌다. 결혼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서클을 함께 하다가 대학시절 고향행 열차를 함께 타고 다니던 문학소녀와 했다.
김 전 장관은 서울법대에 진학한 뒤 낭만과 문학에 빠져 사법시험을 세 차례나 낙방했고 경북고등학교 1년 선배인 이명재 전 검찰총장과 함께 뒤늦게 사시 11회에 나란히 합격했다. 검찰 내에서 지장과 덕장으로 꼽혀왔다.
김 전 장관은 검찰과 법무부에 전후 32년간을 근무하면서 인사에 관련해 신화적인 기록을 남겼다. 검사는 통상 재임 중 절반 정도를 지방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대구지검에서 초임검사로 2년, 거창지청장으로 1년, 춘천지검장으로 7개월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지역에서 근무했다. 더구나 그는 핵심 보직으로 꼽히는 검찰1과장과 기획관리실장, 법무부차관 등을 역임하며 장관에 이르기까지 무려 16년간을 법무부에 근무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말하자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속칭 '잘나가는 검사'였다.
화려한 검사 경력은 퇴임 이후에도 이어져 검사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당시 국내 3대 로펌인 법무법인 세종의 대표변호사를 맡게 된다.
34년 전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20년 전부터 '성라자로마을'이라는 나환자 돕기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서울고검장 퇴임 후에 장관이 되기 직전까지 영등포교도소(현 서울 남부구치소) 교정위원을 자원해 매월 빠짐없이 교도소에 가서 젊은 재소자들을 상대로 인생 상담을 했다.
법무부 교정국장 시절 장차 퇴임하면 재소자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현재는 범죄 전문가로서의 전력을 잘 살려 한국범죄방지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아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 재단은 민간 참여를 통해 각종 범죄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재단법인이다. 김 전 장관은 "우리 사회에서 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날로 그 심각성은 더해가고 있다. 범죄는 주변의 인성을 황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애써 이룩한 성장과 발전을 좀먹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고 있다"며 "범죄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며, 정부의 일만도 아니다. 우리 민간인도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자신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은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그가 태어난 안동 예안면 오천리가 과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어 일종의 실향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몰지역에 있던 종택이나 정자, 사당 등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을 모아서 인근 와룡면에 이전하고 '오천 문화재단지'라는 새로운 동네를 만들었는데, 세월이 가면서 이제는 그곳이 이름난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종가도 있고 인근에 친척들도 살고 있어 이제는 그곳을 새로운 고향으로 삼고 철마다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과거 취임사나 퇴임사, 혹은 후배들에게 남기는 글에서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인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시를 인용한다. 그 시의 끝 구절은 "내가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써/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김 전 장관은 특히 이 구절을 좋아한다. 젊은 시절 우연히 접했다는 이 시가 그의 성공적 이력을 뒷받침해 온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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