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김천] 대덕면 출신 (주)에스씨엘 이상춘 회장

입력 2017-09-29 00:05:00

500원 들고 서울 상경했던 15세 소년 37년 만에 105억 장학재단 설립

이상춘 ㈜에스씨엘 대표는 부도를 앞두고 자살을 결심했던 때를 잊지 못한다. 그는 아직도 집무실 벽에 당시 부도수표 33매, 2억4천만원 상당을 액자로 보존해 걸어두고 있다. 신현일 기자
이상춘 ㈜에스씨엘 대표는 부도를 앞두고 자살을 결심했던 때를 잊지 못한다. 그는 아직도 집무실 벽에 당시 부도수표 33매, 2억4천만원 상당을 액자로 보존해 걸어두고 있다. 신현일 기자

단돈 500원(현재 가치 5만원 상당)을 들고 상경한 15세 소년이 매출 1천억원대의 중견기업을 일궈냈다. 고향을 떠난 지 37년 만인 지난 2008년엔 사재 105억원을 내놓아 장학재단도 만들었다. 상경할 때 다짐한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재경 김천향우회장을 맡고 있는 ㈜에스씨엘 이상춘(62) 회장은 김천시 대덕면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1년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아버지의 권유로 돈을 벌기 위해 서울행 버스를 탔다. 고교 입학시험 1주일을 앞둔 시점이었다. "시험이라도 치르고 가겠다"는 그에게 아버지는 "어차피 학비가 없어 못할 공부인데 시험에 합격한 뒤 떠나면 마음이 더 아프다. 네가 고교에 가면 동생 4명을 중학교에 보낼 수 없으니, 서울 가서 돈을 벌어라"고 했다.

서울로 출발하기 전날 어머니는 밤새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서울행 버스 안에서 전날 어머니의 눈물을 되새기며 결심했다. '반드시 성공해 나처럼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꼭 만들겠다'고.

시골 소년 이상춘은 친척이 운영하는 서울의 볼펜 스프링 공장에서 속칭 '시다'로 일을 배웠다. 6년 동안 고된 공장생활을 통해 기술을 익혔다. 이후 친척이 병환으로 별세하자 공장을 나왔다. 그의 성실함과 근면함을 눈여겨보던 주위 사람 중에 창업을 하면 도와주겠다는 이들이 있었다. 청년 이상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6년간 보고 배운 스프링 제조과정과 판매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1977년 5월 용산구 신계동에 '대신스프링'으로 창업에 나섰다. 창업 1년이 지나 구로구 독산동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하며 '원일정공'(元一精工)으로 개칭했다. 직원 수가 20여 명으로 불어났다. 창업 6년째인 1984년 3월, 부천시 도당동에 제1공장을 설립했다. 스프링으로 시작한 원일정공은 2만여 종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으로 눈을 돌렸다. 밑바닥에서 시작한 청년 이상춘은 기술개발과 품질보증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회사는 1992년 위기를 맞았다. 전국적인 노사분규로 인한 공장들의 잇단 부도 여파로 약 5억원의 어음이 부도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채무자에 시달리던 그는 자살을 결심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하나님께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기도가 하늘까지 닿았는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의 타고난 성실과 근면,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쌓은 신뢰를 눈여겨본 은행지점장이 부도를 막아줬다. 회사를 소생한 후 그는 경영의 내실화를 꾀했다. 시련을 겪은 만큼 단단해진 회사는 외환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 경쟁업체를 인수하면서 회사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이후 해마다 공장을 사들일 만큼 승승장구하면서 경기도 부천의 본사 외에도 경기도 화성, 충남 당진, 중국 톈진에 공장을 설립했다. 자동차 패드 스프링핀 부품 국산화에 성공한 것을 비롯해 핸들 조향장치, 제동장치, 충격완화장치 등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연매출 1천억원이 넘는 굴지의 회사로 거듭났다.

2008년 이 회장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올 때의 다짐을 실천했다. 고향인 김천 출신 학생들에게 학비와 생활비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105억원을 출연해 '상록수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재단 설립 9년째인 지금까지 학생 1천800명에 30억원가량을 지원했다. 이 회장의 고향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김천시인재양성재단, 김천대학교, 지품천중학교 등에 많은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2015년 재경 김천향우회 회장을 맡으면서 새로운 나눔운동을 펼치고 있다. 먼저 김천 출신 경제인 50명으로부터 200만원씩 거둬 1억원으로 봉사단체 '드림회'를 만들었다. 고향 김천의 소외된 분들에게 자그마한 것이나마 드리자는 의미였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모두를 살피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나눔 2000운동'이다. 한 사람당 월 5천원씩 내는 회원을 2천 명 모으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올해 말이면 1천 명이 동참할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나눔 2000운동이 김천뿐만 아니라 대구경북을 넘어 전국으로 번져나가길 희망했다. "한 달에 커피 한잔 값만 아끼면 아름다운 나눔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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