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세기 단추의 황금기: 보석과 단추

입력 2017-09-25 00:05:04

490개 다이아로 만든 루이 14세 단추

*추석 연휴기간인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정상 개관(10월 4일, 10일은 휴관)
*추석 연휴기간인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정상 개관(10월 4일, 10일은 휴관)

단추에서 고귀한 아름다움이 탄생하는 것은 디테일이 정교하고 훌륭한 때이다. 단추는 작지만 가치가 높은 오브제로 거듭되면, 사용된 소재로 보나 표방하는 정신으로 보나 보석과 동등해진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확장되고 다른 액세서리들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보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보석과 금을 옷 위에 쏟아붓는 것은 낡은 아이디어가 되었다. 실용적인 것을 사치스러운 것과 결합하면서 단추에 고리가 생겼고, 이는 귀한 소재가 패션에 얼마나 큰 힘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루이 14세 이래, 유럽의 각 궁정은 보석에 열광했다. 보석 장식은 단추, 신발의 버클, 훈장, 검, 멜빵, 견장 등 어디든 사용했으며, 온몸을 보석으로 휘감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루이 14세의 장신구만 보아도 490개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단추로 만들어졌으며, 이 중에서도 가장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것은 다이아몬드 장식이었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보석 세팅의 기법이 자리 잡게 되는데, 중앙에 보석을 놓고 그 둘레를 다이아몬드로 장식하는 기법인 일명 '퐁파루드 세팅'(퐁파루드란 루이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루드 부인의 보석 장신구에서 연유된 이름)이다. 특히 다이아몬드는 흰 광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금이 아닌 은으로 거미발을 만들어 고정시켰다. 보석의 기법이 다양해지면서, 다이아몬드가 아닌 유리나 인조 보석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아졌다. 궁정에 있는 모든 사람이 왕자들이나 누릴 만한 사치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가 사치를 모방했다. 그래서 인조 다이아몬드인 스트라스도 인기 있는 단추의 소재였다. 다이아몬드는 유리 특히 스타라스나 무색 보석 (수정, 백사파이어, 무색 토파즈)으로 대체되었다. 18세기 말에는 광택과 크기, 장미 모양의 결정 때문에 황철광, 백철광, 그리고 심지어 금속까지 이런 모방 행렬에 참여했다.

18세기 말에는 단추의 크기가 지름이 42㎜나 되는 6프랑짜리 에퀴만큼 컸다. 반지도 단추처럼 손가락을 덮을 정도로 길어졌다. 단추에 새로운 공간이 부여되자 독창성과 변주의 가능성도 커졌다. 이는 동시대의 보석에도 그대로 나타난 특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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