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좋은 개, 나쁜 개

입력 2017-09-22 00:05:01

대여섯 살 때 우리 집은 바둑이라는 이름의 개를 키웠다. 덩치가 자그마한 잡종견이었지만 깡다구가 있어서 동네 개들과의 싸움에서 밀리는 법이 없었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강해 주인에게 위협이 된다 싶으면 상대 불문하고 덤볐다. 그런 성질을 잘 아는 동네 형들도 바둑이 앞에서는 행동을 조심했다. 바둑이와 함께 다니면 든든했다. 마치 호위 무사를 대동한 것처럼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철부지이던 그때는 몰랐다. 내게 좋은 바둑이가 남에게는 나쁜 개일 수 있음을.

수만 년 전쯤, 떠돌이 늑대가 인간 사회로 들어와 가축이 됐다. 인간에 복종하면 힘겨운 사냥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늑대는 알게 됐다. 주인인 인간의 감정을 빨리 읽어내고 귀여움받을 만한 행동을 할수록 종족 보존에도 유리했다. 늑대는 그렇게 인간의 사랑을 받는 '개'로 변신했다. 인간은 개들을 상대로 극단적 근친 교배를 감행했다. 그 결과 주먹만 한 개에서부터 송아지만 한 개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을 한 400여 종의 품종이 생겨났다. 지구상의 어떤 종(種)도 개처럼 다양한 외형을 한 동물은 없다.

주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개들은 매우 사랑스럽다. 외출 후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개들의 뇌파를 분석해 보니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열 1위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는 야생 늑대의 본능이 남아서,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인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이토록 따르는 개들을 접하다 보면 사람들은 착각에 빠진다. "우리 개는 물지 않아요."

목줄과 입싸개를 채우지 않은 채 대형견을 데리고 거리로 나서는 무개념 견주들이 적지 않다. 개에게 물려 사람이 다쳤다는 뉴스도 끊이질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에게 물려 다치는 사람이 공식 통계로 매년 1천 명을 훨씬 웃돈다. 미국에서는 2013년에 1만여 명이 개에게 물렸다는 통계도 있다. 이 중 500명이 숨졌고 열 살 이하 희생자가 70~80%에 이른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늑대, 코요테, 자칼 등 개과(科) 동물들은 자기 무리에 온순해도 다른 무리에는 사납다. 늑대의 본능이 남아 있는 개도 예외는 아니다. 한없이 순종적이다가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느 순간 난폭한 행동을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도 애견 인구 1천만 시대다. 그에 걸맞은 '펫티켓'(애완동물과 에티켓의 합성어)의 정착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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