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世事萬語] 병문안 통제 시대

입력 2017-09-20 00:05:01

"상주에서 3시간 넘게 걸려서 왔다. 병원 직원이 오후 6시가 돼야 환자를 볼 수 있다는데…헛걸음을 했네."

지난 14일 정오쯤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70대 할머니 세 분의 푸념이 들렸다. 이분들은 지정된 시간에만 병문안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촌사람이 그걸 어떻게 아느냐. 옆집 바깥 분이 나무에서 일하다 떨어져 입원했다고 해서 왔다. 얼굴도 못보고 돌아가야 하니 섭섭하다"고 했다. 한 할머니가 들고 있는 주스 상자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이달부터 국내 대형병원들이 병문안 통제를 시작했다.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은 문병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하지만 일부는 직원들에게 하소연하는 등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오래전부터 병문안을 제한했다. 하지만 유명무실했다. 혹자는 병원이 부대 수입(주차요금, 매점 수입 등)을 이유로 문병객을 통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철저하다. 병동 입구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했다.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출입증이 있는 보호자 한 명만 병실에 들어갈 수 있다.

평상시에는 병문안이 원천적으로 제한된다. 평일에는 오후 6∼8시, 주말'공휴일 경우 오전 10시∼낮 12시와 오후 6∼8시에만 병문안이 가능하다. 허용된 시간이라 해도 ▷단체 ▷12세 이하 ▷감염성 질환자는 문병할 수 없다.

대형병원들이 철통 같은 태세로 병문안 통제에 나선 이유는? 보건복지부의 입원 환자 병문안 기준 권고 때문이다. 물렁한 '권고'가 아니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 반영되는 강력한 권고다. 복지부는 '병문안객 통제 시설을 설치하고 보안 인력을 지정'배치한 경우 가산 3점을 주는 조항'을 평가 규정에 포함했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가산점은 큰 변수다.

병문안 규제는 필요하다. 무분별한 병문안은 환자의 안정과 감염 관리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병문안 자체가 적폐의 대상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상당수 언론은 병문안 문화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주요 원인처럼 여론몰이를 했다. 그 바람에 정부의 대응 실패와 병원의 취약한 감염관리체계 문제는 꼬리를 감췄다. 이런 행태를 '프레임 전환'이라고 부른다.

병문안은 후진적 문화가 아니다. '한국인의 정(情)'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증거다. 규제는 하되, 억제는 말아야 한다. 문병객은 대부분 노인층이다. 그들은 친지의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는다. 인정(人情)사회의 마지막 세대인 어르신들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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