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란 거칠 대로 거칠어진 정서의 거친 벌을 다시 곱게 빗질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유진오 소설 '창랑정기'(滄浪亭記)에 나오는 말이다. 고향을 갖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향수'라는 용어는 이미 시효가 지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년기, 혹은 소년기나 청년기를 겪으면서 기억에 박힌 감성적 풍경 정도는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여름날 이른 아침 대문 앞에 서 계시던 아버지 모습일 수도 있고, 가을 무렵 외갓집 가는 길에 맡은 낙엽 태우는 냄새일 수도 있다. 내 안에 남아있는 오래되고도 따뜻한 그 기억이 바로 '향수'이다. 유진오의 '창랑정기'(1938)는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딱히 고향이라고 지칭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도 '마음이 고달플 때, 그 마음을 가져갈' 따뜻한 추억의 한 지점이 있다. 바로 어린 시절 방문한 '창랑정'과 관련한 기억이다. 물이 찬 정자라는 뜻에 걸맞게 창랑정(滄浪亭)은 한강 서쪽, 즉 서강(西江)이 눈앞에 펼쳐지는 곳에 있는 웅장한 고택이다. 여덟 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간 그 고택에서 '나'는 일명 '서강대신'으로 불리는 삼종 증조부를 만난다. '서강대신'은 대원군 집정기에 이조판서를 지내다가 쇄국의 꿈이 무너지고 대원군이 세력을 잃게 되자 스스로 벼슬을 내놓고 창랑정에 틀어박혀 말년을 보내는 인물이다.
주인공 '나'는 왜 몰락한 왕조와 운명을 함께한 완고한 인물 서강대신을 따듯한 향수의 주역으로서 떠올린 것일까. 주인공 나의 기억 속, 서강대신은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해 세상 밖으로 밀려난 우울한 뒷방 늙은이가 아니다. 그는 충(忠)의 유교이데올로기를 따르고, 조선의 우아한 상층 문화를 향유한 조선왕조의 마지막 귀족이다. 신선을 그린 병풍, 사방탁자와 화류문갑, 한문서적들, 범을 새긴 대리석 도장, 벽에 걸린 명필 글씨 액자, 용을 새긴 붓꽂이, 흰 말 꽁지로 만든 총채 등 신비롭고도 호화로운 서강대신의 방 분위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하여 버린 전통적 조선 귀족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고 '창랑정기'가 소멸한 조선문화에 대한 애도에서 이루어졌던 것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서강대신의 순정(純正)한 정신에 대한 존경과 존중의 마음이 소설 한 편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유진오가 '창랑정기'를 창작한 것은 본격적 친일로 나아가기 일 년 전이었다. 이십 대의 유진오는 일제의 식민지 경제정책을 비판했고 식민지 빈곤현실을 고발한 소설을 발표하였다.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한 조선 최고 엘리트답게 식민지 조선현실과 미래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이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1938년, '창랑정기'를 창작하며 유진오는 그 '순정한 정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던 듯하다. 이미 친일로 선회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힘겹게 그 정신을 떠올리고 있었던 듯하다. 그 '순정한 정신'이야말로 지식인, 특히 식민지 최고 엘리트로서 유진오가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진오는 '창랑정기' 이후, 그 '순정한 정신'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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