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EMP 종말론

입력 2017-09-08 00:05:00

평화롭던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어느 날 휴대폰, 전화기, 컴퓨터, TV 등 집안의 모든 전자기기가 동시에 꺼지는 괴현상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정전 여파라고 여겼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복구는 안 되고 차량 시동도 걸리지 않는다. 방송도 먹통이고 상수도와 물자 공급도 잇따라 끊긴다. 병원 내 첨단 의료장비가 멈춰 서면서 중환자들부터 희생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괴현상의 원인이 미 대륙 상공 성층권에서 폭발한 핵폭탄 때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핵폭발로 인해 생긴 엄청난 전자기 펄스(EMP'Electro Magnetic Pulse)가 지상의 모든 전자제품 회로를 망가뜨린 것이다. 전기와 전자기기를 쓸 수 없게 되자 사회 질서는 급속히 붕괴되고 세상은 야만으로 치닫는다.

2009년 발간된 미국 소설 '1초 후'(One Second After)에 나오는 내용이다. 작가 윌리엄 포르스첸이 발표한 이 소설은 EMP로 인한 아포칼립스(종말적 상황)를 묘사한 소설이다. 그런데 소설 내용이 허황된 상상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조짐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수소폭탄 시험을 강행한 북한이 급기야 EMP 공격까지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 관영 매체인 노동신문은 "핵무기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까지 가할 수 있다"고 이틀 연속 언급했다.

모든 전자제품은 EMP에 노출되는 순간 복구 불능 상태가 된다. CD나 DVD 등 광학 매체가 아닌 하드디스크, USB 메모리 등에 저장된 데이터도 모두 날아가 버린다. 문명은 순식간에 전기 발명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간다. 어떤 면에서 EMP는 핵무기보다 더 위협적인 무기다. 전기 공급 중단은 재앙의 시작일 뿐이다. 원자력발전소와 유해화학저장소도 폭발 위험에 빠진다. 살려면 원전 등 위험시설로부터 무조건 멀리 달아나야 한다.

2015년 한국기술연구소는 100kt(킬로톤)의 핵폭탄을 서울 상공 100㎞ 위에 터뜨리면 한반도와 주변 국가의 모든 전자기기를 파괴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가공할 위협 카드를 북한이 들고 나왔으니 여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EMP용 핵폭탄은 요격도 어렵다고 한다. 미국도 북한의 EMP 공격 언급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에 ICBM을 통한 직접적인 핵 타격보다 EMP 공격을 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북한은 세계의 골칫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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