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4억 폭탄'…부품업체 발주량 줄이기·단가 깎기로 터질라

입력 2017-09-01 00:05:01

6년을 끌어 온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31일 '노조 일부 승소'라는 1심 판결이 나왔다. 통상임금은 정기적'고정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다. 법원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것이다. 노조의 추가수당 요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해석도 나와 산업계 전반에 일파만파 영향이 야기될 전망이다.

◆법원,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31일 기아차 노조원 2만7천4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노조 측이 요구한 정기상여금과 중식대, 일비 가운데 정기상여금과 중식비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매년 유사한 시기(정기성) ▷업무 실적 및 근무시간과 무관하게(고정성) ▷모든 직원에게(일률성) 지급되므로 통상임금의 요건에 부합한다는 이유다.

이에 따라 2011년과 2014년 소송에 참여한 노동자에게는 지연이자를 포함해 총 4천224억2천여만원(1인당 1천500만원가량)이 돌아간다.

재판부는 또한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이번 소송을 제기한 것이 '신의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신의칙이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근대 사법의 대원칙이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을 이제야 지급하는 것을 두고 비용이 더 나간다는 점에만 주목해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기아차가 중국 판매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더라도, 현재 영업이익과 24조원이 넘는 사내 유보금 등을 고려하면 여력이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노조 '환영', 기아차 '항소'

기아자동차 노조 측은 1심 판결 직후 "노동자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고 발표했다.

김성락 기아차 노조 지부장은 "통상임금 소송은 그동안 잘못된 임금 계산으로 장기간 노동 여건이 개선되지 않아 시작됐다. 오늘 판결이 (노사) 분쟁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통상임금 폭탄'을 떠안은 기아차는 충격에 휩싸였다.

중국 판매 부진 등 영향으로 상반기 총 7천870억원, 분기당 평균 약 4천억원 정도였던 기아차의 영업이익을 고려할 때 1조원의 충당금을 3분기 회계에 모두 반영하면 6천억원의 영업 손실이 예상된다. 2007년 3분기 이후 약 10년 만에 영업 적자를 겪을 전망이다.

기아차 지분을 33.88% 지닌 현대차도 적자를 떠안는다. 현대차그룹의 '도미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아차는 즉시 항소할 방침이다.

이날 기아차는 소송 결과의 영향으로 유가증권시장에서 전 거래일보다 3.54% 내린 3만5천4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현대모비스(-3.48%)와 현대차(-1.75%) 역시 판결의 영향으로 하락했다.

◆대구경북 자동차부품업계, '부담 가중' 우려

지역 주력산업인 자동차부품업계는 이번 판결이 몰고 올 파장에 애를 태우고 있다.

기아차 및 현대차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다면 부품 협력업체에 대해 발주량을 줄이거나 납품 단가를 동결'인하할 것으로 우려된다. 또는 매출차감 등 편법적인 방법도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구 재계는 이번 소송 결과를 노사 문제보다도 현대기아차 협력업체 위기의 불씨로 봐야 한다는 견해다.

대구상공회의소 이재경 상근부회장은 "수직 계열 협력사에 불과한 지역 자동차업계는 완성차업체의 작은 변화에도 크게 흔들린다. 연관된 기계금속산업에까지도 연쇄적으로 영향이 미칠 수 있다"며 "권리를 보장받은 기아차 노조와 달리 지역 협력업체 근로자의 근로 조건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말했다.

지역 내에서 통상임금을 둘러싼 유사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실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올해 6월 말까지 통상임금 소송을 겪은 100인 이상 사업장은 이미 전국 192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115개는 여전히 소송 중이다.

대구 한 자동차부품회사 임원은 "통상임금 재산정을 요구하는 노조의 목소리가 이어지면 기업들은 법적 검토를 위해 소송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 매출이 감소하는 가운데 소송비까지 가중되면 부품업체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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