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외교관의 인맥

입력 2017-09-01 0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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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8세기 유럽에서는 특정 국가가 타국, 심지어 잠재적 적국의 외교관을 돈으로 매수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다. 그리고 외교관도 적극적으로 타국에 뇌물을 요구했다.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영국의 외교관으로 "대사(大使)는 자국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도록 외국에 보내진 정직한 사람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헨리 워튼이다. 그는 베네치아 주재 영국 대사로 있을 때 사부아 왕국으로부터 뇌물을 받으면서도 스페인에 뇌물을 요구했다.

프랑스 혁명 정부도 뇌물 공여로 얼룩졌다. 1793년 프랑스 혁명 정부의 공식 문서에 따르면 1757~1769년 사이 프랑스는 혁명에 적대적이었던 오스트리아 정치가들에게 거액을 뿌렸다. 같은 '반동세력'이었던 프로이센에도 그렇게 했다. 프로이센이 프랑스와의 전쟁을 포기하기로 한 바젤 조약(1795년) 체결 후 프랑스는 프로이센 정부의 실력자 카를 하이텐베르크에게 3만프랑어치의 답례를 제공했다.(하이텐베르크는 너무 적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외교관이 다른 나라 왕의 신하가 돼 자기 나라와 맞서는 일도 흔했다. 독일 정치가 비스마르크에게 러시아 황제가 외교관 자리를 제의한 일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스마르크는 러시아 주재 프로이센 대사로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러시아 황제에게 이임 인사를 했다. 별 뜻 없이 '유감'이라고 했는데 이를 '러시아가 섭섭하게 했다'는 뜻으로 오해한 러시아 황제는 그에게 "러시아 외교관으로 일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비스마르크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고 회고록에 썼다)

오늘날에는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이 가능했던 배경은 두 가지다. 첫째 당시 정치와 외교를 맡았던 유럽 귀족들은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그들 만의 공통된 행동 원칙, 관습,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둘째 인맥, 혼맥 등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현대의 관점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두 번째, 그중에서도 '인맥'이다. 외교는 공식적 접촉만으로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비공식적인 막후(幕後) 접촉이다. 이는 외교관 개인의 친화력으로도 가능하겠지만 상대국에 인맥이 있으면 훨씬 수월하다.

문재인 정부 첫 주미, 주중, 주일 대사로 내정된 인물이 전문성은 물론 주재국에 인맥도 없어서 북핵 문제 등 초미의 외교 현안을 순조롭게 조율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안보 걱정거리가 또 하나 생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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