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공간에 추억은 여러 겹이었다. 60년도 더 된 기억들이 얽히고설켜 뭉뚱그려졌을 거라 치부하기엔 낱낱의 기억은 또렷했다. 개별적인 추억을 가늠해내는 더듬이가 있는 듯했다. 웬걸, 그 더듬이는 아직도 자라는 것 같았다.
수필가 구활의 마음속 안식처, 경산 하양장터와 금호강변을 함께 찾았을 때는 마침 5일장이 선 날이었다. 장터는 낯선 세상과 통하는, 대문만 열면 별세상이 열리는 게이트웨이였다.
돔배기를 보며 자신도 바닷속 물고기가 돼 유영했고, 어른 머리보다 큰 말굽버섯을 보고 무학산보다 더 높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5일마다 머릿속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넣을 수 있는 곳이었다.
2017년 여름, 70대 중반의 그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장터를 한 바퀴 돌았다. 이 자리에 있던 누군가, 저 자리에 있던 그 주인, 그리고 저기 저 밑에서 동냥하던 이들을 떠올렸다. 60년 세월에 터줏대감인 줄로만 알았던 주인도 바뀌고 사람들도 바뀌었다. 그래도 그들에 대한 기억들은 잘도 제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날도 그는 하양장터 장날 풍경을 기억에 담았다. 하양장터가 '꿈바우시장'이라는 세련된 이름을 붙였지만, 장터가 시시각각 바뀌고 있음을 작가도 모를 리 없었건만 장터를 둘러보는 발걸음은 공식처럼 일정해 치유의 의식인양 느껴졌다.
장터에서 대구선 철로를 건너가면 곧 금호강변이었다. 그의 글들을 좇다 보면 문득, 개울에서 물고기 잡던 얘기가 이렇게도 자주 글감으로 등장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전생에 금호강변을 구역으로 삼은 천렵(川獵)꾼이 아니었던가 싶다. 실제 그에게 금호강은 화수분이었다. 배고프던 시절에는 단백질 보충제인 피라미를 안겨줬고 밥벌이로 펜을 든 이후에는 끊임없는 글 재료를 던져줬다.
작가의 추억상자는 어김없이 열렸다. 고무신 뒤축이 떨어져 부끄러워하던 10대 까까머리 아이가 먼저 오나 싶더니, 금호강변으로 피라미 잡으러 낚싯대를 둘러멘 20대 청년이 뛰어 왔고, 신혼여행 뒤풀이로 캠핑을 왔던 새신랑이 친구들과 웃으며 텐트를 치고 있었다.
금호강변에 온 그는 정말이지, 주변이 능금밭 천지던 금호강의 풍요로웠음을 얘기했다. "낙원이나 다름없었지"라는 그의 기억 소환이 끝나갈 무렵 우연인지, 필연인지 낙천대(樂天臺)라는 이름의 아파트가 현실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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