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쓸었다.
산길은 키 큰 나무와 굽은 나무가 마주 보고 긴 터널을 만들었다. 그곳 숲길 정자 앞에 300년 늙은 서어나무가 군락을 지어 산다. 서어나무는 참나무와 더불어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 온대림 대표 수종이다.
애당초부터 그 큰 서어나무는 시간과 세월을 잊었다. 다만 산중을 오가는 길손과 사람의 행복과 안도를 지켜볼 뿐이었다. 나무 아래 빗자루를 내려놓고 손을 모으면 숨겨 둔 바람 한 점 불어준다.
나는 이제 젊지 않다.
책을 읽거나 길을 걷더라도 더디게 두 배의 시간이 든다. 모든 일에 집중하고 심사숙고하는 것이다. 이순을 넘었다. 나는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것일까? 도량에는 매미가 여름 여름하고 떠나갈 듯 울었다. 창문을 열어 놓으니 보석 같은 햇살이 무시로 쏟아진다.
'나는 걷는다'는 올여름에 읽은 경이로운 책이다. 그는 '르 피가로'와 '파리마치' 등 유수의 신문과 잡지사에서 근무했다. 부인과 사별하고 일선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심혈관질환, 신장결석, 기억력 감퇴, 협착증 등도 그를 막지 못했다. 60세에 걷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나처럼 특별한 재능도 없고, 소심한 사람이 실크로드를 걸었으니 누구나 걸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프랑스 리옹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2천900㎞를 4개월 걸었다. 예순넷이던 2002년 이스탄불을 출발해 1만2천㎞를 걸어서 중국 시안(西安)에 도착했을 때는 10년이나 소요되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나는 걷는다'는 3권으로 된 여행기이다. 띄엄띄엄 읽어도 오래 걸린다. 사진 한 장 없이 보고, 듣고, 겪고, 생각한 것들을 느리게 걷는 오랜 길이 때때로 숨 가쁘게 빨리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걷고 싶게 만드는, 떠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홀로 사색하며 휴대폰 없이 길을 걸었다. 종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매번 길을 잃었다.
중국 시안까지 짐을 운반하던 '율리시스'의 수레도 매번 고장이 났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저자 올리비에 옆에서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계획은 매번 엇나가고 사고는 예측하기 어렵다. 무화과를 따 먹으려다 다치기도 하였다. 보스니아에서는 지뢰 매설 지대에 옴짝달싹 못 하고 갇히기도 한다.
'나는 걷는다'는 사막을 지나고, 해발 평균 고도 6천100m 이상인 파미르고원을 넘었으니 죽음을 극복한 것이다.
바슐라르는 그의 글에서 "삶을 욕망해야 한다. 원해야 한다. 미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손을 뻗고 걸어야 한다. 미래가 우리를 향해 오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고 말한다
나이 들기 전에 책을 읽어라. 청춘이여, 나이 들기 전에 먼 길을 여행하라. 모든 사람은 노년의 문턱이 온다. 누구나 나이 들어 멈춰야 하는 때를 고민한다. 뭔가 시작할 때를 지난 것 같다고, 그러나 그는 길을 나섰고 길 위에서 멋지게 살고 늙었다. 길의 왕이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파주 출판단지에서도 걸었다.
그의 원칙은 걷는 일이다. 세계 최초로 전쟁, 질병, 맹수가 우글대는 실크로드를 당나귀처럼 뚜벅뚜벅 걸어갔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서 갈 것' '사진 없이 기록할 것' '걸을 때는 혼자서 걸을 것' '여행은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믿기 힘든 존재를 만나게 하고, 예상하지 못한 시골구석에서 소박한 조화로움에 충격을 받거나 그때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을 나 자신이 하거나 생각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것을 말한다.'
오늘 우리는 혼자 있지 못하고 무리에 둘러싸여 있다. 서로 편을 갈라 세우고 어느 한쪽을 편애하려 한다. 혼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엇을 예뻐하고 사랑하는 데 있지 않다. 그 의도가 다른 것에 대한 폄하와 무시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넓은 길과 좁은 길, 증세와 감세 어느 길을 택할지 강요받는 것이다.
넓은 길은 넓어야 한다. 좁은 길은 좁을수록 좋은 길이다. 출발이 제일 힘든다. 그러나 다시 출발하려면 더욱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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