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역사기록물 상세 안내서…『승정원일기』

입력 2017-07-29 00:05:22

승정원일기

김종렬 지음, 노준구 그림/ 사계절 펴냄

현존 세계 최대 규모의 역사책으로 평가받는 '승정원일기'의 자수는 대략 2억4천만 자. 888책 5천400만 자라는 조선왕조실록보다 4배가량 많고 중국 역사서를 모두 모아놓았다는 '25사'(4천만 자)의 6배다. 명나라의 역사가 모두 들어 있는 '명실록'도 1천600만 자에 지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승정원일기의 방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세계 최대의 역사기록물 승정원일기를 상세하기 들여다보는 안내서다. 이 일기가 쓰인 역사적 배경부터 지면의 짜임, 주요 내용까지 삽화를 곁들여가며 알기 쉽게 구성했다.

임금의 '혀와 목구멍'(喉舌)이라는 승정원은 지근에서 왕을 보필하던 관서로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에 해당한다. 주 업무인 왕명 출납 외에도 왕의 국정자문과 외국 사신 접대 등 다양한 일을 담당했는데 '일기' 작성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예문관 소속 사관(史官)들이 왕조 전반 역사를 기술한 데 비해 승정원은 왕의 동선에 밀착해 입시(入侍)기록을 맡았다. 조선시대 대부분 관청들이 대부분 궁궐 밖, 광화문 6조 거리에 모여 있었지만 승정원만큼은 궁궐 안에 있었을 정도로 역할이 막중했다.

승지들이 왕명 출납과 국정자문 등 정무업무에 주력했다면 일기 작성의 주체는 '주서'(注書)였다. 주서는 승지를 도와 승정원으로 들어온 모든 문서를 정리하고 왕의 업무처리 과정을 옆에서 기록했다.

주서들은 왕과 신하의 대화를 즉석에서 한문으로 번역하여 기록했기 때문에 한문은 물론 속기에도 뛰어나야 했다. 보통 주서는 15개월이 임기로 정해져 있지만 기간을 채우는 사람은 거의 없고 3, 4개월 만에 자리를 옮기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하고 힘든 자리였다. 주서는 3D 업무에 직급도 정7품으로 낮았다. 그럼에도 과거급제 엘리트들에게 선망의 자리이기도 했다. 힘든 자리인 만큼 장래에 '도승지'로 진출할 인재로 여겨졌고, 주서를 거친 관원은 승진이나 보임(補任)에서 우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인 일기 사초(史草)는 승지(承旨)의 결재, 감수를 거쳐 국정자문, 경연, 대언(代言)의 자료로 쓰였다.

일기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고 내용을 적는 순서도 대략 정해져 있다. 첫 줄에는 날짜와 날씨가 들어갔다. 특이한 것은 날씨를 기록하는 방식이 100가지가 넘을 만큼 다양하다는 것.

하루 사이 기상이 변해가는 과정을 소상히 기록했다. 바로 옆에는 '좌목'이라는 칸이 있어 그날 업무를 맡았던 승지와 주서 이름이 들어갔다. 여기엔 직원들의 출결사항, 당직, 휴가(병가), 출장기록부터 지각 여부까지 기록돼 조선 관원들의 일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쓰인다.

이런 의전기록이 모두 끝나면 왕이 하루 동안 살핀 국사와 각 관청에서 올라온 문서와 여기에 대한 해결, 결재사항이 모두 기록된다.

이 기록들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궁궐 속으로 들어온 듯 실감 나는 사실과 만나게 된다. 군신(君臣) 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불같이 화를 내는 왕과 기개를 꺾지 않고 당당하게 논지를 펴나가는 신하의 목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아주 생생하다.

3천245책, 288년의 기록. 조선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역사서를 편찬하는 데 기본자료였다. 조선시대 왕들은 사관이나 주서 없이는 누구와도 독대하지 않았다. 정치는 숨길 것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온 것이다.

오늘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기록물이 사라지거나 은폐되는 현실에 비추어 승정원일기는 존재만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134쪽, 1만2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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