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21세기 새로운 보건 정책 목표로 만성질환을 설정했다. 세계 인구 20억 명이 비만이고 그중 10억 명이 만성질환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인류 보건 최대 목표가 '전염병 퇴치'에서 '만성질환 관리'로 바뀐 것이다. 국내에서도 당뇨병'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이미 1천만 명을 넘어섰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가암등록통계(2014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 이상이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서구식 식단'을 지목하고 대국민 식생활지침을 실행하고 있다. 사실 각 나라 정부의 권장 식단은 유사하다. 통곡물, 과일, 채소 등 식물성 자연식품을 많이 먹고 고기와 유제품을 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식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자는 식습관을 언어에 비유한다. 모국어는 자연적이고 쉽게 배우지만 결정적 시기가 지나면 외국어를 배우기란 상당이 어려워진다. 새로운 식단을 받아들이는 것도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대부분 식습관은 어릴 적부터 문화나 환경에 의해 강제당한 것이다. 식습관은 무의식의 영역에 속해 있어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어렵다. 아니면 너무나 자연스러워 스스로 선택했다고 착각하고 살아간다. 이것이 정부가 국민 건강을 외치며 식단을 바꾸려 해도 식생활지침이나 영양지침이 실패하는 이유이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정책과 보조금, 식생활 교육과 글로벌 접근 등 동시다발적이고 강력한 충격이 요구된다.
첫째, 관련 산업의 이해에서 벗어나 나쁜 식품과 좋은 식품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고기나 유제품, 정크푸드를 줄이자는 직접적 메시지는 회피하고 채소, 과일을 더 먹자는 정책은 상대적으로 그 효과가 떨어진다. 행동경제학에서 보여주듯 나쁜 음식을 줄일 때 그만큼 좋은 음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전 세계가 단지 채소, 과일 가격을 낮추는 정책에서 효과를 보지 못해 광고 규제나 정크푸드 등에 비만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그 이유이다.
둘째, 좋은 선택은 장려하고 나쁜 선택은 억제하는 쪽으로 보조금을 전환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로비단체의 압력 때문에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 매우 불합리한 지원이 세계 경제 규모의 2.5%에 달한다는 연구가 있다. 예로 환경부 예산에 비해 환경 파괴에 지원한 보조금만 수십 배 많은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특히 농업과 먹거리 분야에 그 모순이 심각하다.
셋째, 환경 비용을 감안하면 햄버거 하나 가격은 3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시장가격이 환경이나 건강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생산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 환경에 미친 부수적 피해를 원칙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보편적 연대와 협력을 통해 외부 효과를 줄이고 환경과 새롭게 관계를 맺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에 따른 급격한 정치'경제적 변화도 감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맛도 좋지만 사회적 정의와 생태계 보호, 생명윤리와 지속 가능성도 고려하는 음식 선택이 필요하다. 식습관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다. 기존 문화의 공적 담론에 대한 이의 제기를 통해 우리 자신과 문화에 내재한 폭력성과 미망을 자각해야 한다. 서구식 식단의 극복은 음식을 넘어 삶의 방식 즉 문화의 전환이며 음식과 인간 지구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역사적 소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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