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이 절벽인 천연 요새…임진왜란 의병 흔적 곳곳에
여유롭고 싶다면 황상동 코스 추천
8, 9부 능선에 민가'농지 갖춘 산성
구미 천생산이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뭔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 이름 덕일 것이다. '천생'(天生)이면 '하늘이 낳은'의 뜻이다. 불교나 도교식 산 이름에 익숙한 우리에게 '천생'은 자체로 낯설다. 근처에 호국도량이나 개천(開天) 제단이라도 있다면 그것과 연결시켜 퍼즐을 풀어갈 것이지만 그런 흔적도 안 보인다. 그렇다면 산의 지세나 민담, 전설을 통해 그 내력으로 접근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현지에 가서 답사를 하다 보면 어떤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학구적(學究的) 핑계를 댔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이 산을 꼭 한번 오르고 싶었다. 지척에 있어 늘 별러왔던 산이고 임진왜란 때 호국산성인 천생산성이 있기 때문이다.
◆구미정보고-미덕암-정상 코스 올라=천생산 등산로는 황상동 구미정보고 쪽 길과 인의동 삼림욕장 길 두 곳으로 나뉜다. 삼림욕장 코스는 거북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최단거리 코스다. 저수지나 과수원을 따라 전원 속을 한가롭게 걷고 싶다면 황상동 코스로 오르면 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주 구미정보고 앞에 차를 대고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초입의 검성지 푸른 물결에 잠시 더위를 잊는다. 산행 중 아쉬운 것은 등산로 표지판이 거의 없다는 점. 주민들에게 몇 번을 물어 겨우 등산로를 찾아들어야 했다.
406m라고 동네 뒷산쯤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오르다 몇 번을 쉬며 헐떡거렸다. 아무렴 천생산 이름이 그냥 붙은 건 아닐 것이다. 불볕더위 속에서 씨름하다 1시간쯤 오르니 천룡사 갈림길이 나타났다. 삼거리서 나무 데크를 따라 곧장 오르니 미덕암과 정상 능선이 나타났다.
◆'일당천'의 천혜 요새 천생산성=미덕암에 올라서자 동쪽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바로 옆으로는 녹음에 우거진 신장리 마을 풍경이 정겹게 다가온다. 미덕암은 삼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암봉이다. 바위 절벽이자 동시에 천생산성 남쪽 망루에 해당하는 포인트다.
깎아지른 암봉에 서자 '천생산' 의미가 바로 이해됐다. 산객의 직관으로 '하늘이 낳았다는 천생산'은 '천혜의 입지로 산성'을 의미하는 듯했다. 바로 이 산성만 지키면 '일당천'의 열세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지세였다.
미덕암을 출발해 동문-북문-정상으로 이어지는 산성을 걷다 보니 '요새'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산성의 삼면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북쪽 나들목만 지키면 게임은 그대로 끝이었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은 이곳에 의병을 모아 진을 치고 수시로 유격전을 벌였다. 임란 당시 내륙 전투에서 왜군의 가장 골칫거리는 의병이었다. 별안간 급습해 치명타를 입히고 재빨리 산성으로 숨어버리는 통에 왜군들은 전쟁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금오산'가산'문경새재와 합동작전=낙동강 수로를 따라 한양과 연결되던 구미는 교통과 전략의 요충지였다. 바로 인근에 금오산성, 칠곡도호부가 있던 가산이 있고 또 서울과 통하던 또 하나의 요충지 문경새재가 있다. 낙동강 수계에서 적주아요(敵駐我擾), 적피아타(敵疲我打) 유격전을 펼치기에 최적의 포인트였던 것이다.
천생산성은 8, 9부 능선에 내성과 외성을 축조해 만들었다. 내외성을 갖추었다는 것은 민거(民居)와 군비(軍備)기능을 동시에 갖춘 성곽이라는 의미다. 민가와 농지가 있었다는 얘기는 식수와 농수 공급이 가능했다는 말이니 과연 만인지활(萬人之活)의 성터라 할 만하다.
정상에 오른 후 시간이 허락된다면 성터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장천면 쪽 풍경이 시원하게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 국난에 목숨을 내놓고 성을 지켰던 의병들의 흔적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남의 중심에서 호국 보루로 역할=하산길은 성밖삼거리 앞 검성재에서 왼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면 된다. 귀갓길에 산은 마지막 이벤트를 하나 펼쳐 보인다. '한국의 테이블마운틴'이라고 불리는 통신탑 근처 풍경이다. 산 능선이 평평한 테이블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남미 베네수엘라의 '테이블 마운틴'에서 유래했다. 성밖삼거리서 '테이블'의 끝자락인 통신바위까지는 약 10분 거리.
다시 성밖삼거리서 황상동 표지판을 따라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풍수에 문외한인 일반인이 보아도 천생산은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영남의 허리에서 의병운동을 든든히 받쳐주는 국방의 요새요, 낙동강 수계에서 왜군의 교통을 끊었던 호국의 성지였으니 천생(天生) 하늘이 내린 길지(吉地)였다.
♣산행 후 초계국수 먹으면 피로 싹~
불볕 산행에 지친 몸을 달래는 데는 시원한 초계국수가 제격이다. 마침 천생산 밑자락에 초계국수 맛집 '이선이 한정식'이 있다. 이 집 식당 조리법의 가장 큰 특징은 동치미를 직접 담가 국물을 낸다는 점. 곰팡이가 하얗게 피고 코끝이 찡할 때까지 숙성을 시켜야 제대로 된 국물이 완성된다. 여기에 양파, 무, 생강, 마늘을 넣고 끓인 야채육수가 더해진다. 동치미 국물과 야채육수를 1대1로 배합한 후 닭가슴살 고명을 얹으면 '이선이표 초계국수'가 완성된다. 면(麵)에서도 차별화가 뚜렷하다. 이 식당은 충남 예산에서 가져온 '옛날국수'를 쓴다. 자연건조한 면이라 일반 소면보다 쫄깃하고 식감이 매끄럽다. 초계국수 7천원, 초계국수+숯불돼지불고기 세트 1만원. 010-3763-9052.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