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멈출 때까지 써보자고 틀어놓은 선풍기가 더위의 한 자락을 감았다가 놓았다가 치매 앓는 노인처럼 앉아 있다. 평상 위로 마실 온 멧새가 그 모습을 엿보며 꽁지깃을 까닥, 까닥거린다.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내는가 보다.
길가 배롱나무에는 가지마다 햇빛 알레르기처럼 붉은 반점이 돋아나더니 꽃망울이 불꽃같이 터졌다. 시원한 바람의 소매를 당겨보는 듯 여린 나무줄기가 가볍게 흔들린다.
오늘은 오일장 날이다. 이 마을, 저 마을의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앉은 장터에는 들고 나온 갖가지 보따리들의 속내가 풀어지고 색색의 파라솔이 무지개처럼 걸렸다. 늙도록 버리지 못한 소박한 꿈을 옹기종기 펼쳐놓았다.
시골 어른들이 대부분 그렇듯 내 부모님께서도 밭에서 일을 많이 하신다. 농사철이 바뀔 때마다 곡식이며 푸성귀를 거두어 출가한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시는 것을 큰 기쁨으로 아신다. 그러나 여러 개의 꾸러미에 싸 주신 것들을 미처 다 못 챙겨 먹어 냉장고 안에서 상해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럽기만 했다.
곧 주말이 다가온다. 이번엔 부모님 댁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는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여름이란 계절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기료를 아끼느라 놓아 드린 에어컨도 켜지 않으시는 어른들께 시원한 등목이라도 해 드리고 더위 때문에 입맛도 없다고 하시니 식사라도 챙겨 드려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더운 여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꽃은 여름에 많이 핀다. 아름다운 꽃들을 보는 재미로 더위도 견딜 만해진다. 화단엔 저절로 뿌리가 벋고 씨가 떨어져 자란 화초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오래전에 먼 세상으로 부쳤던 나의 엽서가 하나, 둘씩 꽃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더위의 강한 기세가 꺾이지 않을 것 같더니 한차례 소나기가 게릴라처럼 지나갔다. 반가운 걸음으로 나가본 집 옆 비포장 길, 갑작스러운 비를 맨몸으로 받아내느라 조그맣게 패인 웅덩이에 누군가의 생각 한 되가 담겨 있다. 시련이 지나고 희망을 품은 듯이 하늘빛 물을 안고 파랗게 숨 고른다.
비를 맞고 싱그러워진 작은 연못에는 연꽃의 웃음 물결이 울긋불긋 환하다. 이름도 어렴풋한 어린 시절의 얼굴들 같다. 풀 냄새 나는 여자애들의 희고 붉은 원피스 같다. 왁자지껄하며 소풍 도시락을 펼친 듯이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흘러온다. 나는 오늘, 이 사소한 풍경들을 다시 볼 메시지처럼 몇 장의 사진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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