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더워도 추워도 '병' 온다

입력 2017-07-26 00:05:01

찜통같은 더위에 열이 후끈 에어컨 찬바람에 콧물 줄줄

고혜진 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고혜진 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기온 37~38℃ 온열질환 위험

·열사병은 즉시 응급조치 필요

·실내외 생활 반복하다 냉방병

직장인 이영훈(42) 씨는 속된 말로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려 한동안 애를 먹었다. 과음을 하고 귀가한 늦은 밤, 열대야를 못 견디고 에어컨을 켜둔 채 잠든 게 화근이었다. 아침이 되자 콧물이 줄줄 흘렀고, 참기 힘든 두통에 시달렸다. 더운 바깥에 있으면 잠시 괜찮았다가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다시 콧물이 줄줄 흐르길 반복했다. 이 씨는 "찜통 같은 더위를 선풍기 바람에만 의지해 견뎠다"면서 "당분간 폭염이 이어질 텐데 에어컨 켜기가 겁이 난다"고 한숨을 쉬었다.

여름은 건강을 놓치기 쉬운 계절이다. 뜨거운 햇볕과 상하거나 오염된 음식, 청결하지 않은 물놀이장, 모기 등 여름에는 건강을 해치는 요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푹푹 찌는 무더위는 건강을 위협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됐다간 열탈진이나 열사병 등 온열질환에 걸리기 쉽고, 지나치게 시원한 실내에만 머물면 냉방병으로 때아닌 여름감기에 시달릴 수 있어서다.

더위와 맞닥뜨린 우리 몸은 피부로 가는 혈류량을 늘리고 땀을 흘려 체온을 낮춘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열이 나거나 열을 떨어뜨리는 기능이 무너지면 온열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온열질환은 열부종, 열탈진(열피로, 일사병), 열실신, 열경련, 열사병 등을 모두 이르는 말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평소보다 4배가량 늘어난다. 기온이 31.2℃를 넘으면 1도가 오를 때마다 온열질환 위험도는 1.7배 높아진다. 기온이 37~38도가 되면 온열질환에 걸릴 위험이 10배 이상 커지는셈이다.

특히 노약자나 심장기능이 떨어져 있는 경우, 심한 운동이나 이뇨제 등으로 탈수가 심해진 경우, 음주, 항콜린제(알레르기 비염, 위'식도역류, 과민성 방광 등의 치료제 성분), 항히스타민제 등 특정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경우 등에는 온열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체온이 40.5도를 넘으면 초기에는 세포 독성과 염증 반응, 뇌변성 등이 일어나고, 고체온 상태가 계속되면 신장, 간, 혈액 응고인자 등 다양한 신체 기능이 망가져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열부종은 더위에 노출되고 난 뒤 손발이 붓는 증상을 말한다. 기온이 오르면 몸은 열을 발산하기 위해 피부 표면의 혈관을 확장하고 혈류량을 늘린다. 이 상태에서 같은 자세로 오래 있으면 순환하던 혈액의 수분이 혈관 밖으로 이동하면서 몸이 붓게 된다. 열실신은 체액이 줄고 말초혈관이 확장되면서 일시적으로 쓰러지는 경우를 말한다. 주로 노인들이 많이 겪고, 의식을 잃기 전에 어지럽거나 구역, 발한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열경련은 더위 속에서 오랜 시간 격렬한 활동을 한 직후 종아리나 허벅지, 어깨, 배 등에 경련과 통증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두 체온을 낮추고 휴식을 취하면 빠르게 회복된다.

가장 흔한 온열질환은 열탈진(열피로'일사병)이다. 무더위 탓에 몸의 염분과 수분이 빠져나가는 탓이다. 땀을 많이 흘리고 창백해지며 무기력하고 극심한 피로와 어지러움을 느끼는 게 특징. 서늘한 곳에서 전해질 음료나 수액, 염분 등을 보충하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

가장 위험한 온열질환은 열사병이다. 열사병은 체온조절 중추가 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기능을 잃는 게 원인이다.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고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 구역질 증상을 호소하다가 심하면 혼수상태에 빠진다.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치솟고, 땀이 나지 않아 피부가 건조하다. 열사병 환자는 즉시 119구급대에 신고한 뒤 그늘로 옮겨 체온을 낮춰야 한다. 의식이 혼미한 환자에게 함부로 음료를 먹여선 안 된다.

고혜진 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가장 더운 시간대인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야외 활동을 피하고, 자주 쉬면서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해야 한다"며 "많은 물을 한 번에 마시지 말고 가볍고 헐렁한 옷차림으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덥다고 시원한 실내에만 머무는 게 능사는 아니다. 바깥보다 기온이 5~8도 이상 낮은 실내와 무더운 바깥에서 지내는 과정을 반복하면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가 지치면서 냉방병에 걸리기 쉽다. 또한 에어컨의 냉각수나 공기가 세균에 오염되면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될 수 있다. 레지오넬라균은 냉각기에 잘 서식하고, 같은 냉각기를 사용하는 건물 전체에 퍼진다. 특히 노약자나 면역 기능이 떨어진 이들이 감염에 취약하다. 낮은 습도도 냉방병을 일으킨다. 냉방장치는 공기 중의 수분을 응결시켜 기온을 떨어뜨린다. 환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에어컨을 돌리면 습도가 30~40%까지 떨어지면서 호흡기 점막이 마르고 저항력이 떨어지게 된다.

냉방병에 걸리면 두통과 콧물, 재채기, 코막힘 등 감기와 비슷한 호흡기질환 증상이 나타난다. 신경통이나 요통, 소화장애 등을 겪거나 몸이 나른하고 쉽게 피로해지기도 한다. 손발이 붓거나 관절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냉방병을 예방하려면 실내 기온을 25도 이상으로 유지하고, 실내외 온도 차가 5도를 넘지 않도록 조절한다.

도움말 고혜진 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