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홍준표의 대구 정치

입력 2017-07-25 00:05:01 수정 2018-10-10 16:33:40

정치인에게 지역적 지지 기반은 요긴한 자산이다. 계파까지 거느리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한국 정치사를 쥐락펴락한 거물 정치인은 이 둘을 다 갖고 있었다. 대한민국 제1야당을 이끌고 있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그런 점에서 이례적인 정치인이다. 4선 국회의원과 경상남도 도지사 재선, 대통령 후보, 두 번의 당 대표 등 화려한 정치 이력을 쌓아왔지만 지금까지는 지역적 지지 기반이 명확하지 않았고 계파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그는 검사 시절부터 아웃사이더로 유명했다. "자존심 하나로 사는데 아바타 정치는 안 한다." 그는 정치도 자수성가형으로 했다. 계파를 만들기보다는 빠른 정치적 감각과 촉을 바탕으로 대중 정치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막말조차 정치에 활용했으며 '독고다이 홍' '홍그리버드' 등 그에게 붙여진 '쎈' 어감의 별명은 그 결과물이다.

홍 대표는 대구에서 중'고교를 다녔지만 경남 창녕 출신인데다 경남도지사를 연임했기 때문에 PK(부산경남) 정치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최근 들어 TK(대구경북)에 정치적 뿌리를 내리겠다는 제스처를 잇따라 취하고 있다. 지난 2월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 "내가 TK 성골은 아니더라도 진골쯤은 된다"는 발언을 봐도 그렇고,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 출정식을 서문시장에서 연 것도 그렇다.

지난달 28일 경산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는 한술 더 떠서 "마지막 정치 인생을 대구에서 마무리하고 싶다"고까지 했다. 이날 권영진 대구시장한테는 "시장님 똑똑히 들으라. 내년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했다. 구구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대구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싶다는 뜻을 비치기도 했고 최근에는 대구 달서병 당협위원장을 맡겠다는 말도 했다.

홍 대표가 서울 격전지를 피하고 대구에서 손쉽게 당선되기 위해 이 같은 발언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발언의 전후 맥락과 당 내부 사정을 종합해 볼 때 홍 대표의 대구 정치 발언은 자유한국당의 위기감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자리를 놓고 여당의 총공세가 예상되는데, '보수의 심장'인 대구를 빼앗길 경우 자유한국당의 미래가 괴멸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그는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

보수 야당의 대표가 대구에서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전략인데, 이는 대구경북의 미래에 어떤 대차대조표를 그리게 될까. 직전 대통령 2명을 배출한 이후 거물 정치인 공백 상황을 맞은 대구경북으로서는 "정치적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보수 정당 대표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홍준표=대구 정치인'이라는 각인은 득보다 실이 클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박근혜정부의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대구경북에 멍에처럼 드리워져 있는 마당에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구 정치인이라는 등식이 도로 덧칠되는 것을 환영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홍 대표의 대구행이 자유한국당을 'TK자민련'으로 고착시킬 위험마저 있다는 점도 영 마뜩잖다.

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 지지도라도 높다면 달리 고려할 수도 있으련만 지금의 자유한국당을 보면 마치 찌그러진 밥솥 같다. 설익은 밥, 탄 밥 투성이인데 서로 잘 익은 밥 먹겠다고 난리다. 존재감은 보이지 않는다. 각료 인선 청문회와 추가경정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여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신3당 공조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은 사실상 고립되고 말았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을 보면 상대방(정부 여당)의 자책골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국가대표팀을 연상케 한다. 그런 점에서 총선이 3년 가까이 남은 것은 차라리 저주에 가깝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비전과 실천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얻겠다는 고민을 할 시기이지, 대구경북으로 숨어들겠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보수 정당의 TK 안주(安住) 시나리오는 흥행 가능성이 희박한 졸작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대구경북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그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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