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생활하던 나는 요즘 직장 일로 평일을 대구에서 보내며 주말부부로 지낸다. 부산이 고향이고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나는 대구가 같은 경상도 문화권이라 여러 면에서 금세 친근감을 느낀다. 도시 모습도 산뜻하고 사람들도 정겹다.
주말 서울을 오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갈 때면 이따금 도시철도를 이용하고 버스를 타기도 한다. 그런데 도시철도 승강장의 스크린 도어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경고 문구를 읽는 순간 아무래도 어감이 이상하다.
"노란 안전선 밖에서 기다리시오."
안전선 밖에서 기다리라니…. 위험한 곳으로 가서 기다리라는 말인가? '안전선'이면 그 안에 있어야 안전하다는 의미일 터인데…. 도시철도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지하 역 구내로 들어섰다. 열차를 기다리는데 안내 방송이 나온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뒤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어쩐지 들리는 어감이 어색하다. 아무래도 승객들로 하여금 안전선에서 멀어지라는 경고로 들린다. 안전선에 가까이 있거나 그 안에 있어야 안전할 것 같은데 안전선 뒤로 물러서라니 어색하다. 3호선 경고 문구나 1호선 역 구내방송 모두가 열차는 안전선 안에서 운행하고 승객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즉, 열차는 보호하고 승객들은 위험한 곳으로 내몬다? 그럴 리는 없다. 그런 문구나 방송에 대해 대구시민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지적하지 않는 것인가? 그냥 알아서 바르게 알아듣는 것인가?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다 보면 또 신기한 것이 보인다. 사거리마다 붙은 도로 표지판이다. 유독 대구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표현이다.
범어네거리, 수성시장네거리, 명덕네거리….
왜 유독 사거리만 '네거리'로 표기할까?
그런데 들안길삼거리, 중동우체국삼거리, 두산오거리, 계산오거리, 수성못오거리 등으로 표기한다.
나는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수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고, 업무상 수많은 나라들을 다녀보기도 했다.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한류 문화의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위상이 국제사회에서 몰라보게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여러 유명 대학에서 한국학을 연구하기도 하고 한국어 과정을 개설하여 많은 수강생이 몰리기도 한다.
그러한 위상에 맞게 우리 글과 말을 바르게 쓰고 알리는데 무관심해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문제가 나라의 정책으로 본격 대두된 것은 세종대왕 시기일 것이다. 훈민정음 서문에는 한글 창제의 이유를 분명히 쓰고 있다. 즉, 중국말을 적는 글자로는 우리말을 올바로 표기할 수 없으므로 일반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뜻을 원만히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지가 어언 600여 년이다.
그동안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다듬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들은 정부나 학계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말과 글을 오염시키는 흔적들이 너무도 만연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만연하는 그들만의 장난기 어린 표현들은 시대적 현상이고 그 시기에 누리는 일과성 현상일 것이라고 물러서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언어 표현의 품격과 교양을 갖추어야 할 곳에도 우리말과 글의 오염은 심각하다. 심지어 정부기관이나 관공서의 문서에서도 우리글의 오남용은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2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전 국민의 4% 수준이다. 우리말과 글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그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통한 우리 문화의 세계적 확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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