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삼행시·오행시

입력 2017-07-24 00:05:04

삼행시(三行詩)의 유래는 약간 모호하다. 인터넷에는 '무한도전' TV 프로그램에서 유래됐다는 순진무구한 답변이 있지만, 보통 'acrostic poem'(離合體詩'이합체시)에서 유래한 말놀이로 정의한다.

그렇지만, 삼행시는 이합체시와는 다소 다른 것 같다. 삼행시는 첫 글자를 따서 문장을 만드는 것이고, 이합체시는 각 시구의 첫 글자를 조합해 다른 뜻의 말이 나타나는 형식이다. 이합체시의 대표 사례인 '김정일 찬양시'다. '김씨 일가 나라 세워/ 정통성을 이어받아/ 일국 발전 도모하세/ 미제 소탕 목표 삼아/ 친위부대 결사하니/ 놈들 모두 혼쭐나네….' 첫 글자를 조합하면 '김정일 미친놈'이니 '세로반전의 묘미'다.

삼행시는 옛날 선비들이 운자(韻字)를 받아 즉석 시를 짓는 방식과 비슷하다. 운자와 관련해서는 김삿갓의 시가 유명하다. '수많은 운자 가운데 하필이면 '멱'(覓)자를 부르네/ 그 '멱'자도 어려웠는데 또 '멱'자를 부르다니/ 하룻밤 잠자리가 '멱'자에 달려 있는데/ 산골 훈장은 오직 '멱'자만 아네.' 산골 훈장이 김삿갓을 골려주기 위해 시를 짓기 어려운 '멱'자 운을 네 차례나 불렀으나, 김삿갓은 오히려 훈장을 비꼬며 재치있게 응수했다.

'可憐妓詩'(가련기시: 기생 가련에게)도 기생의 이름과 자신의 처지를 절묘하게 대비한 시다.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김삿갓 시의 특징은 재미와 풍자, 해학이었으니 오늘날에도 김삿갓을 본받은 후예들이 많다.

올 초 대선 기간 중에 최고 유행한 삼행시는 '반기문'이었다. '반: 반갑습니다/ 기: 기호 1번/ 문: 문재인입니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귀국 직후에 나온 삼행시였으니 인기 폭발이었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이름을 풍자한 삼행시도 있다. '황: 황교안입니다/ 교: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안: 안희정을 밀어주세요.' 문 대통령과 안 지사가 젊은 층의 지지를 받은 만큼 젊은이의 정서에 맞는 삼행시가 수없이 만들어지고 나돌았다.

자유한국당이 당명을 소재로 한 오행시 이벤트를 벌였는데, 쓴소리만 쏟아진 모양이다. '자: 자기 밥그릇을/ 유: 유난히 챙기니/ 한: 한 번도/ 국: 국민 편인 적이 없음이/ 당: 당연하지 않은가?' 재미와 해학이 엿보이는 오행시다. 자유한국당이 이런 질책과 비판을 받고 바뀌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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