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운명바꾼 英·佛 연합군 철수 작전
'메멘토'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1998년 데뷔하여 10편의 장편영화를 세상에 내놓으며 차근차근 영화팬들의 신뢰를 쌓아나갔다. 알려지지 않은 신인의 솜씨라기에는 깜짝 놀랄 만한 스토리 구조와 스타일을 보여준 '메멘토'에서 거대예산의 철학적 SF 블록버스터로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끌어들인 '인터스텔라'까지 계속적인 성공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미권을 대표하는 명감독으로 우뚝 섰다.
많은 이들이 3년 만에 선보일 그의 11번째 영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덩케르크 철수작전' 실화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놀란이 시도할 전쟁영화는 또 어떤 새로운 영화 문법을 보여줄지 관객의 기대가 높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1940년 5월 26일에서 6월 4일까지 전개된 사건으로,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 중 일어났다. 이 작전은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에서 모조리 패배한 프랑스'영국 연합군이 그나마 간신히 성공한 작전이다. 덩케르크 이후 병력을 보존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 전을 성공으로 이끌며 향후 대반격을 꾀하였으니, 이는 2차 대전의 변곡점이 된 역사적 작전임이 분명하다. 한국전으로 치면 '흥남 철수 사건'에 비견될 만한 사건으로, 절망적인 전황에서 연합군을 구원한 사상 최대 규모의 탈출 작전에서 무려 33만 명이 넘는 영국 군인들이 구출되었다.
영화 '덩케르크'는 일주일간의 영국군 철수작전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당연히 감독은 영국인이고 주요 배우들도 영국인이다. 영화는 여느 전쟁영화와는 달리, 어느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는다. 영화에는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덩케르크 어딘가에서 사투를 벌인 각자의 스토리를 산발적으로 보여준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군인들이 느꼈을 공포감을 표현하려고 실제 배우들도 연기가 처음인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고예산의 영화임에도 스타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캐네스 브래너나 톰 하디 같은 영국 출신의 유명배우들도 잠깐씩 등장하고 대사 분량이 많지 않다.
탄탄한 스토리와 볼거리로 무장했던 놀란의 전작들을 생각한다면, 이번 작품은 그의 영화 스타일에서 이질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놀란 감독은 자신의 명성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아낌없이 주어진 자본으로 마음껏 영화적 실험을 한 것 같다. 극적인 스토리 구축과 딜레마에 빠진 캐릭터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실감 나게 보여주던 여느 전쟁영화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아이맥스 카메라와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65㎜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여 전쟁 한복판에 내던져진 병사의 시각에서 전투를 바라보게 한다. 덩케르크 해변에서 해상전과 공중전을 펼치는 당시 전투 속으로 관객은 깊숙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음향과 음악의 효과적인 사용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펼쳐지는 전투의 공포를 더욱 가중시킨다.
스케일이 큰 영화임에도 CG를 거의 쓰지 않고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하였으며, 실제 당시 전투에서 사용되었던 헬기와 무기를 활용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더욱 리얼리티를 강조한다. 밀리터리 팬들 입장에서는 볼거리가 무척 많을 것이다. 현대영화의 테크놀로지가 이룬 성취로 덩케르크는 완벽하게 재연되었다.
이 영화가 가진 많은 장점에도, 영국인의 시각에서, 영국을 중심에 놓고 펼치는 전개는 다른 나라 관객 입장에서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된다. 영미권 비평가들의 찬사에도 이 영화를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 전쟁의 공포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군인들, 그리고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알지 못한 채 끌려가 목숨을 걸어야 했던 젊은 병사들, 최대 위기 순간에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인간 본능 등 보편적인 갈등과 투쟁의 드라마가 있긴 하지만, 이 부분은 크게 강조되거나 극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역사상 최고의 철수작전으로 평가받는 덩케르크에는 뛰어난 지략가였던 사령관이 있고, 국가를 위해 자신들을 던진 민간인들이 있으며, 이름 없는 군인들과 그들을 응원한 국민, 그리고 여러 차례 삽입된 처칠 총리의 감동적인 코멘트가 있다. 이것들을 특히 강조하는 이 영화의 존재 이유를 현재 정치 지형도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난데없는 브렉시트 찬성투표 가결로 영국인들이 주변국으로부터 받는 지탄, 계속되는 경제 불황과 테러의 위협, 정부에 대한 불신과 보수주의로의 회귀 등 그 어느 때보다도 영국인의 자긍심이 무너지는 이때, 영화는 과거 나치즘과 최전선에서 맞섰던 용맹했던 영국인들의 기 살리기용 프로젝트라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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