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하늘 아래 재생 1번지

입력 2017-07-21 00:05:04

화면 속 가파른 길, 할머니가 노래를 한다. 멜로디가 몹시도 귀에 익다. 그래!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무슨 꽃잎이 피어 있을까…. 나비와 같이 훨훨 날아서 나는 가고파 에이야호" 찾아보니 '소녀의 꿈'이라고, 1956년 발표된 금사향의 노래란다. 이 노래는 참 묘하다. 신나게 슬프다. 사뿐사뿐 시작하는데 자꾸 슬프게 들린다. 이제 곧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갈 거라고, 행복하게 살 거라고, 게다가 마음은 벌써 그곳에 가 있노라고 말하는데 왠지 그럴 것 같지가 않다. 그곳엔 결국 못 갈 것만 같고, 저 산 저 멀리, 꽃과 왕자님이 기다리는 그런 피안의 세계는 영 쉽게 올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슬프다. 아마 그 시절 저 비탈진 마을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산업의 역군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자 누이였을 그들도 때론 기쁘게 또 때론 슬프게 저 '소녀의 꿈'을 노래했을 것 같다.

서울 창신동 돌산마을을 그렇게 TV로 처음 만났다. 문득,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산을 타고 다닥다닥 올라붙은 집집이 이야기가 있을 거고 직접 가보면, 걷다 보면 살면서 잃어버렸던 조각 몇 개가 저기 어디쯤 나뒹굴고 있을 것 같다. 그곳에 가면 회오리고개에는 아직 할머니의 노랫가락이 남아있을 테고 "그래도 여기가 세상 좋다"며 계단을 오르던 할아버지의 미소도 여전할 테니, 어디 안 가고 텃새처럼 내내 돌산마을에서만 살아가는 햇살과 바람이 따로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도시재생이 뜨고 있다. 사람을 부르고 돈을 벌어줄 거라 한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재생'이 '개발'로 둔갑하는 때도 있다. 하늘 아래 재생 1번지라 불리는 이 돌산마을도, 심지어 가수 김광석도 살았다는데, 한때 뉴타운 지구로 지정되어 몽땅 없어질 뻔했다고 한다. 다행히 주민들이 나서고 힘을 모아 오늘에 이르게 했고 이젠 찾는 사람이 점점 더 늘고 있다 한다.

도시재생은 이래야 한다. 돌산마을에는 돌산마을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다르면 이야기가 다르고, 이야기가 다르면 마을의 빛깔이 다르고, 마을의 빛깔이 다르면 마을의 햇살과 바람도 다르다. 도시재생은 그 마을의 '다름'을 찾는 일이다. 그 다름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다름으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이 행복해지게 만드는 일이다. 도시재생의 그 무엇도 할머니의 노래보다, 할아버지의 미소보다 우선되어선 안 된다. 도시재생은 도시를 개발하는 일이 아니라 그곳의 삶을 받드는 일이며 동시에 그곳을 그곳답게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교토의 A씨가 좋다고 하는 것도 대구의 B씨는 얼마든지 싫을 수 있다. 그래서 도시재생은, 대구의 도시재생은 출국길 공항이나 컨벤션센터가 아니라 북성로의 어느 가게, 침산동의 한 외진 골목 담벼락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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