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TBC 공동기획, 신지호가 만난 사람] 김재훈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입력 2017-07-21 00:05:04

"드라마 속 로펌 변호사 화려하지만…현실은 샐러리맨"

대형 로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법을 악용해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음모와 배신, 복수도 서슴지 않는 고급 두뇌집단. 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렇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인데 정말 그런 것일까? 법무법인 광장의 김재훈 대표변호사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본다.

-법무법인을 흔히 로펌(law firm)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종전에는 법원, 검찰청 앞에 변호사들이 개인 사무실을 열거나 합동 법률사무소를 열어서 민사, 형사사건 등을 다루었다. 그런데 우리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국제화되면서, 변호사들도 이런 발전 추세에 맞추어 기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게 되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변호사들이 집단을 이루어 각 분야별로 전문 변호사를 육성하여 대응하였는데 이렇게 대형화되고 각 전문 분야를 갖는 법률회사를 로펌이라고 부른다. 종합병원에 내과, 외과 등이 있고, 내과에도 소화기내과, 호흡기내과, 순환기내과, 신장내과가 있는 것과 같다. 사회가 복잡 다기화되면서 법률 업무도 세분화되어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

-법무법인 광장은 우리나라 로펌 가운데 역사가 오래된 걸로 알고 있다. 언제 어떻게 설립돼 여기까지 왔나?

▶광장은 1977년 서울중앙지법 판사를 하다가 하버드대학 로스쿨에 유학을 가서 미국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를 하고 귀국한 이태희 변호사가 설립하였고, 올해 40주년이 된다. 이태희 변호사께서 서구식 로펌을 직접 경험하였기 때문에 종전 법원 앞 변호사 사무실 대신 기업 본사들이 모여 있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사무실을 열었고, 소송 외에 기업 자문 업무에 중점을 두고 발전하게 되었다. 제가 1986년에 광장에 합류했는데 그때 20여 명 규모였고, 당시 백인 변호사도 4명 있었다. 국제 중재, 인수합병(M&A), 합작회사 설립, 통상 분쟁, 해상항공 사건, 각종 자금 조달, 해외증권 발행 등 그간 듣도 보도 못한 업무를 수행하는 당시로서는 전혀 다른 변호사 회사였다.

-보통 변호사 하면 재판 업무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광장의 경우 기업들에 대한 법률적인 조력을 제공하는 것이 주 업무이면, 재판하지 않는 변호사도 꽤 많을 것 같다.

▶현재 구성원이 600명 정도다. 변호사 530명을 포함해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관세사 등이 있다. 530명의 변호사 가운데 150명만 소송 업무를 한다. 나머지 변호사들은 전혀 소송 업무를 하지 않는다. 밖에서 생각하는 변호사 업무와는 다른 일을 한다. 주로 자문역을 하고, 계약과 협상에 참여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외국계 대형 로펌들이 FTA 협정에 따라 국내에 30개 정도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위협이 되지는 않나?

▶1990년대 WTO 체제 도하라운드에서 서비스 시장(법률시장 포함) 개방 문제가 크게 제기되었고 일정한 조건하에 개방하기로 하는 양허안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도하라운드가 무산되었고 법률시장 개방이 연기되었다. 이때부터 광장은 외국 로펌처럼 각 분야별로 전문가를 육성하고 규모를 키우는 등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준비하여 왔다. 아직도 세계 기준에 비추어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한국인은 한번 한다면 하는 기질이 있지 않나.

-법무법인 광장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세 가지다. 첫째, 최고의 전문화와 각 전문팀의 융합을 통하여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둘째, 정도(正道)를 걷는다. 셋째, '업무는 프로답게, 관계는 가족처럼'이다.

-일반인들은 드라마나 영화에 그려진 모습, 즉 픽션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로펌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변호사 가운데서도 최고의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으로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반면에 부정적인 모습 즉, '돈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해 내는 조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실제 어떤가?

▶전혀 그렇지 않다.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이다. 미국 작가 존 그리샴의 법정소설이나 우리나라 미니시리즈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며 로펌 변호사들에 대해 생활은 화려하지만 무언가 비밀스러운 일들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늘어난 것 같다. 최근 몇몇 법조인들이 스캔들에 연루되어 부정적 인식이 확산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SBS에서 방영된 '귓속말'이라는 드라마를 몇 회 보았다. 그 드라마에서 그려지고 있는 대부분이 실제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과장이 아니라 완전 허구다. 기업인들이 산업 현장에서 불철주야 노력하며 기업을 일구는 것처럼, 로펌 변호사들도 정말 늦은 밤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일을 하며 기업들의 애로 사항 해결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나는 가수다'가 한때 유행했는데, 대다수의 로펌 변호사들은 헌신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나는 변호사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프로들이다.

-법조계의 인맥 중시 관행은 좀 나아졌다고 하나 여전하다. 사건 의뢰 시 실력보다는 담당 판사, 검사와의 친분을 중시하기도 하는데….

▶수사나 재판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 100% 그런 일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에 비해 굉장히 투명하고 엄격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법원의 경우, 판사들과 만나는 것도 어렵다. 승패를 좌우할 사안이 아니라 절차상 재판 자체를 매끄럽게 하는 차원의 얘기도 전달할 수 없다. 시스템상 재판부와 통화를 못 하게 하고, 법정에서도 쌍방이 있는 곳에서만 얘기를 해야 한다. 검찰도 사건 선임계를 내야 사건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쌍방의 변호를 한 로펌이 맡을 수도 있나?

▶그런 상황을 법률 용어로 컨플릭트(conflict'충돌)라고 한다. A라는 회사를 대리해서 B라는 회사와 싸우고 있는데, C라는 회사를 대리해서 A라는 회사를 공격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A회사로부터 동의를 받지 않으면 곤란하다. 특히 소송 상황에서는 동의가 필요하다.

-얼마 전 국정 농단 특검을 했다. 그런데 특검에서 맹활약한 분이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된 재벌그룹 총수의 변호인이 됐다. 법조윤리에 맞는 것인가?

▶구체적인 상황을 몰라 정확히 말씀드리긴 힘든데, 아마 실제로 해당 재벌의 수사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그러나 특검에서 활동한 사람이 재벌을 변호하는 것은 국민 정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저희 회사의 경우 특검으로 와 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은 분이 있었지만, 변호를 하는 고객을 조사하는 입장이 될 수 있어서 거절하였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제11조)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관행이다. 국선변호인 제도가 있다고는 하나, 재력에 따른 법률 서비스 조력이 너무 차이가 나는 게 현실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공익활동을 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형태의 법률구조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다. 로펌들도 그런 비판에 직면하다 보니 사회공헌활동,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 서비스에 신경을 쓰고 있다. 저희 회사의 경우, 공익위원회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장애인에 대한 활동 보조 서비스가 10여 일 중단된 적이 있는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차별구제청구(장래 재발 방지를 내용으로 함) 소송을 진행하였다. 또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시청각 장애인들을 배려하지 않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광고가 있었는데, 광장에서 장애인들을 대리하여 선거방송의 시정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여 실제 개선되는 결과를 이끌어 낸 적도 있다.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하여 아무런 대책 없이 집에서 나온 여성을 대리하여 남편을 상대로 이혼 및 위자료,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전부 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박태환 선수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박태환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을 보유한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체육회와 수영연맹의 잘못된 규정(도핑에 걸린 선수는 징계 기간 경과 후라도 올림픽 출전 자격 박탈),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차관의 반대 등으로 인해 출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저희 광장에서 국내 민사법원에 올림픽 출전 자격이 있음을 확인하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여 10일 만에 승소판결을 이끌어냈고, 스위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의 국제 중재 사건에서도 승소하여 박태환 선수가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삼성전자가 얼마 전 반도체와 휴대폰 모두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삼성-애플 간 최대 국제 특허분쟁 사건에서 삼성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적도 있지 않나.

▶구체적인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고객과의 약속이 있어 어렵다. 당시 법정에서 통신기술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공대를 졸업한 전문가의 견해가 중요했다. 법원 판사가 공학적 기술에 대해 잘 알 수 있겠나. 판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여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 주효했다.

-최근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원자력발전 관련 에피소드도 있다고 들었다.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세워지고 난 직후 한전과 프랑스 프라마톰 사이의 대형 국제 중재를 담당한 적이 있다. 그때 사무실이 원전 기술 관련 파일로 뒤덮일 정도였다. 성공적으로 방어하여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 한전이 원자력발전소를 국내에 세우고 슈퍼 갑이라는 프랑스 회사와 싸워 성공적으로 방어한 지 30년이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20조원이 넘는 원전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강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

-로펌판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어떠한 계기로 판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광장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1986년 군법무관 복무를 마치고 판사나 검사가 아닌 로펌행을 택했다. 광장을 선택한 이유는 선배 변호사의 칭찬 한마디였다. 군법무관 제대를 몇 달 앞두고 로펌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려고 광장에 갔는데, 한 선배가 대형 중재 사건에 대한 서면을 써보라고 해서 써봤는데 그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그 선배도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며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그 일을 계기로 광장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영어를 좋아했던 것도 국제 업무를 하는 로펌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변호사 500명 이상의 거대 조직을 이끄는 경영 철학은 무엇인지?

▶로펌의 핵심은 좋은 변호사, 즉 사람이다. 유능한 변호사를 채용하고 훈련시켜 최고의 변호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된 최고의 변호사들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여야 한다. 대표의 역할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비슷하다. 구성원들을 한집안 식구처럼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과 업무에 대해 집안일처럼 구석구석 알고 오랫동안 쌓여온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으면 긴 설명 없이도 일 처리가 매끄럽게 된다. 로펌 규모나 매출로 경쟁하지 않고 광장이 지향하는 가치를 가지고 운영하고 성장해 왔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계획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따라 전진해 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무엇보다 광장 구성원들이 행복하고 고객이 만족하면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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