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군수가 되면 말 그대로 제왕(帝王)입니다. 자기만의 작은 왕국을 갖는 셈이죠. 무소불위(無所不爲), 말 그대로 못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한 번 눈 밖에 나면 끝장입니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나 싶었다. 틈만 나면 주민들을 만나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유망 기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지역 투자와 지역민 신규 채용을 요청하며, 중앙 부처 공무원들을 일일이 방문해 지역 숙원 사업에 국비 예산 배정을 당부하는 우리의 시장님, 군수님을 전제군주에 비유하는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웠다. "거참, 모르는 소리 하시네. 시장, 군수 한 번 하고 말 거예요? 4년 뒤에 선거가 또 있는데, 선거 치를 돈은 어떻게 마련하고, 음으로 양으로 자기 도와줄 사람은 어떻게 가려내고, 사조직 관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도시를 제외하고 웬만한 시'군에선 지방자치단체가 가장 큰 조직이다. 돈도 가장 많고, 인력도 많고, 무엇보다 힘을 갖고 있다. 관청에 들락거려 봤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공무원 한 명이,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힘은 없어도 되는 일을 안 되게 만들 힘은 있다고. 그런 공무원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이 시청, 군청이고 그곳의 장(長)이 시장, 군수님이다.
시장'군수는 공무원 인사권을 갖고 있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공직 사회는 승진이 최대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합리적 원칙에 따라 승진과 보직 이동이 이뤄지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 어찌 예외가 없겠는가. 업무 수행 능력이나 조직 관리력 등을 수능 점수처럼 등급으로 매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런저런 입김이 작용하게 마련이다. 아니 보다 노골적이고 솔직하게 말해서 시장, 군수의 눈 밖에 나면 승진은 물 건너간다. 특히 5급 이상 중간 간부직으로 올라가면 더욱더 그렇다. 그 해에 승진 못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최소한 4년간 승진은 남 얘기가 되고, 재수 없으면 3선 제한까지 무려 12년간 족쇄가 채워진다. 인사철이 지나고 나면 이래저래 말들이 나오지만 이내 사그라들고 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체장 지시를 거역하는 공무원이 나올 수 없다. 거역은커녕 조금 다른 의견이라도 제시하기 쉽잖다.
행여 향후 선거에 걸림돌이 될 만한 인물은 아예 제거한다. 부시장, 부군수로 오려는 사람이 단체장의 꿈을 꾸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배수의 진을 치고 막는다. 그 나름 코드가 맞아서 후임으로 맡겨도 괜찮겠다 싶은 사람은 기를 쓰고 곁에 두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인의 장막을 치고 권력을 독점하는데 감히 누가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 관청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단체장과 식사라도 한 번 하려고 기를 쓴다. 지난 선거에서 아무개가 큰 역할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가 지역에서 하는 일은 '프리패스'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사태를 두고 국정 농단이라고 말하는데, 어느 동네에나 '시정 농단' '군정 농단' 정도는 있게 마련이다. 장난치는 규모가 국정 농단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거나 아니면 아직은 살아 있는 권력이기 때문에 감히 딴지를 걸지 못해서 밖으로 말이 새 나오지 않아 잠잠할 따름이다.
물론 아주 가끔은 용감한 내부 고발자가 나서거나 내부자들 사이의 알력 다툼으로 비리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법정에 서고 수의를 입는 단체장들이 나온다. 이런 드문 경우가 아니면 단체장들을 제어할 수단이 딱히 없다.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단체장들이 딱 한 번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손이라도 잡아달라고 읍소할 때가 있다. 바로 지방선거다. 4년마다 돌아오는 지방선거에서 옥석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면 다시 그들은 무소불위의 제왕으로 돌변한다. 냉정해져야 한다. 특정 정파나 세력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된 심부름꾼을 뽑아야 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선거 때마다 늘 뽑아줬더니 이번에도 뽑아주는 게 당연하게, 아니 안 뽑아주면 안 되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다. 제발 눈 똑바로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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