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갈등의 이유와 해소의 길

입력 2017-07-15 00:05:01

얼마 전 목양관 사택을 이사했다. 이전보다 좀 더 조용한 환경을 선택하였다. 처음의 사택은 노변에 위치한 아파트였기에 소음이 심했다. 나이가 들수록 소음에 민감해졌고 그로 인해 수면 장애를 일으켰다. 소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사 전달의 수단이지만 그 소리가 필요 이상 많아지면 소음이 되고 적지 않은 고통을 준다. 여름만 되면 폭주족들이 나타나 밤길을 소란케 한다. 한밤중에 내는 오토바이의 굉음은 많은 사람들의 밤잠을 깨우고 무더위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문제는 폭주족들이 그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웃에 주는 피해에 대하여 송구함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소음은 이런 폭주족들에게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건설 현장이나 시장 또는 학교 운동장 등지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그러나 그것은 생산성의 긍정성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이 수용하고 있다. 같은 소음이라도 주변인에게 수용성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로 이해가 달라진다.

6'25전쟁이 휴전으로 이어지면서 그 후부터 근래까지 군부대에서 나는 소음은 수용되어 왔다. 휴전 국가였기에 군사 훈련에서 나오는 소음들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사격 훈련과 전투기의 이착륙 과정에서 유발되는 엄청난 굉음까지도 참아 내어 왔다. 그러나 여러 해 전부터 군부대가 민원의 요인이 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대구 지역의 군사 시설인 K2 공군기지가 지역 민원의 현안이다. 이전(移轉) 예정지로 지목되는 곳에서는 새로운 민원 갈등으로 어지럽다. 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참고 수용해야 한다는 측과 결코 고향 땅을 군사 시설로 내어 줄 수 없다는 반대 측이 서로 갈등이다. 같은 일을 두고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 일이 참을 만한 생산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 원자력 발전소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문제로 인하여 새로운 사회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새 정부는 원자력이 갖는 에너지 자원의 효과보다 그 위험성에 비중을 두고 앞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줄여나가고자 한다. 이른바 탈핵화의 시작이다. 그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특히 그 분야에서 종사하거나 전공하여 후학을 가르치는 학자들은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그것이 갖는 생산성을 주목하느냐 아니면 파괴력을 주목하느냐가 열쇠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갈등들이다. 아니 이미 민주화된 사회이기에 일어나고 있다. 이런 갈등에서 그 문제를 풀어가는 능력이 우리 사회 민주화의 성숙도를 높여 가게 될 것이다. 독재 사회도 갈등은 있다. 단지 그것이 북한처럼 독재자의 공포정치로 인하여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그 아랫부분이 빙하처럼 9분의 8이다. 그래서 엄청난 파괴력이 잠재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1970, 80년대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먼저 경험한 바가 있다. 이젠 갈등을 묶어 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때그때 풀어가려는 노력들을 해야 한다. 휴전 중의 한반도 상황에서 민주적 해법이 소모적이고 위험스럽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보수는 불확실한 대안으로 불안감을 계속 일으키는 진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국가 안위를 위하여 갈등 해소에 강압적 수단의 유혹을 느끼고 있다.

성경은 갈등 해소의 길을 이렇게 가르쳤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라"(빌립보서 2:3)고. 각각 이견을 갖고 마주치면서 갈등이 불거져도 사회 구성원들이 인내하며 이런 태도만 견지한다면 평화롭고 안정된 변화는 계속 가능할 것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