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나 외엔 관심 없는 세상

입력 2017-07-14 00:05:00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이다. 총이나 포탄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는 군인이 가슴에 품은 어머니 또는 가족사진은 아련한 추억과 뭉클한 사랑을 품고 있다. 사진 한 장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죽어가는 장면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아날로그 세대들은 아직도 색바랜 흑백사진을 보며, 회한에 젖는다. 자라나는 디지털 세대에겐 그런 아련한 필름 사진이 없다. 모두 스마트폰 사진뿐이다.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순간순간의 자기만족뿐이다. 일상 풍경이나 음식 사진만 가득한 경우도 많다. 스마트폰이 바뀌면 백업도 하지 않아 그대로 사라지는 사진들도 부지기수다. 스마트폰 사진은 일회성'소모성이며 추억이 깃들 수가 없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의 차이일 수도 있고, 기성세대와 신진세대 간의 다른 풍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나 빠른 이런 시대의 흐름은 우리들 정신세계를 가볍고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초'중'고생은 물론 미취학 아동들까지 스마트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청년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프라인 일상의 행복을 모르고 살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의 수업시간을 제외하면,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들은 말리다 지쳐서 아예 포기하고 '하루에 몇 시간만 하라'고 타협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밥을 먹으면서, 부모나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만지기 일쑤다. 현대사회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라고 치부한다면 너무 슬프다.

스마트폰 세상으로 대표되는 1인 중심 사회, 극단적 개인주의로 흐르는 시대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은 주변 공동체의 인간미 넘치는 활동보다는 연예인을 위주로 한 상업문화에 젖어들고, 가상게임에서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 외에는 관심이 없다. 기성세대 역시 이런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기는 힘들다. 나밖에 모르는 사회는 배려나 양보도 없고, 공동체와 함께할 때 누릴 수 있는 행복도 맛볼 수가 없다.

'나 외엔 관심 없는 세상'의 미래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나 외에 다 필요 없다'라는 사고는 극단적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망상에 젖은 우울증 또는 조울증 환자들도 넘쳐난다. 예전에는 잘 알지도 못했던 '공황장애' 또는 '조현병'이라는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유명인이나 일반인들도 급증하고 있다. '나밖에 모르는 세상'의 부작용과 부산물들은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인'법조인'의료인'공무원'회사원'학생'주부 할 것 없이 '그들만의 리그'로 흐르고 있는 듯하다. 정의나 가치는 부재 중이다. 통합과 소통은 외출 중이다. 용서와 포용도 출장 중이다. 이래서는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안전망도 부실해져 있다. 라오스나 부탄 등 국민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들이 우리나라보다 잘살아서가 아니다. 공동체 속에서 행복을 찾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줄 알기 때문이다.

뭔가에 쫓기듯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잠시 브레이크를 밟고 삶의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다. 부모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대신할 더 큰 오프라인의 즐거움을 주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공통 관심사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화젯거리가 되고 있는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해야 한다. 옛날이야기도 할 수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세상으로 가 볼 수도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걸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도 있어야 한다.

'나 외엔 관심 없는 세상'은 당사자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비극이다. '너에게 그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 다 함께 소통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성세대가 먼저 손을 내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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