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면서 즐기는 답사여행] 전북 남원

입력 2017-07-13 00:05:04

실상사 돌아보며 '보물' 찾기

실상사는 산속 평지 가람으로 중국 달마의 선법을 이어받은 아홉 산문(山門) 중 처음으로 문을 연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실상사는 산속 평지 가람으로 중국 달마의 선법을 이어받은 아홉 산문(山門) 중 처음으로 문을 연 유서 깊은 사찰이다.
철조여래좌상. 철 4천 근으로 만든 높이 2.7m의 거대한 철불이다.
철조여래좌상. 철 4천 근으로 만든 높이 2.7m의 거대한 철불이다.
백장암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벗어난 이형(異形) 석탑으로는 흔치 않게 완전한 상륜부 구조를 간직하고 있다.
백장암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벗어난 이형(異形) 석탑으로는 흔치 않게 완전한 상륜부 구조를 간직하고 있다.

단일사찰 중 문화재 가장 많아

약수암 탱화도 필수 코스

이성계 명성 새긴 황산대첩비

동편제 본고장서 판소리 감상

남원은 지리산 서북 방향 운봉·바래봉 자락을 품고 있는 고원지대이다. 예부터 지리산 북쪽 지역 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 도시였다. 춘향과 흥부 이야기가 깃든 예향(藝鄕)의 고장이기도 하다. 여름철 든든한 보양식으로 남원추어탕이 인기 있고, 무해하고 뛰어난 색상으로 변색되지 않는 남원목기도 유명하다, 문화재의 보고(寶庫)인 실상사, 황산대첩비, 동편제 탯자리로 여름 여행을 떠난다.

◆지리산 실상사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 깊은 곳에는 산봉우리를 꽃잎으로 삼고 꽃술에 해당하는 자리에 실상사가 자리 잡고 있다.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가 행정구역인 실상사는 산속의 평지가람이다.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중국 달마의 선법을 이어받은 아홉 산문(山門) 중 처음으로 문을 연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증각대사가 창건하였다. 홍척은 도의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한 후 지리산으로 들어와 이 절을 세우고 실상산문을 개산했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 해탈교를 건너기 전 돌장승이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손님을 반긴다.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돌장승은 원래 4기였으나 1963년 홍수 때 1기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남아 있는 3기 모두 정교한 조각 솜씨가 돋보인다.

해탈교를 건너 정겨운 논길을 200m 걸어가면 입구인 만세루가 나오고 바로 사찰 앞마당이 펼쳐진다. 미끈한 삼층석탑 2기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모든 것이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재를 많이 보유한 사찰은 경주 불국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가 손꼽히지만 실상사는 우리나라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국보 1점, 보물 11점)를 보유하고 있다. 사찰 앞마당 정면에 있는 보물 제35호 석등은 높이 5m로 장중하다. 팔각 지대석 위에 이중으로 아래쪽은 안상, 위쪽에는 8잎의 연꽃으로 조각된 석등은 고복 형태(북 모양)의 간주석이다. 3단 마디로 층을 이루며 돌출된 마디마디 중앙에 세 줄 띠를 두른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석등 앞에는 불을 켤 때 사용했을 사다리형 돌계단이 있다. 다른 사찰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귀한 양식이므로 눈여겨보기 바란다.

석등 뒤에는 우아하고 섬세한 3층 쌍탑이 우뚝 솟아있고 탑 오른쪽에는 약사전이 있다. 약사전 안에는 수철 스님이 철 2천400㎏(4천 근)으로 만든 높이 2.7m의 거대한 철불(철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백두대간에서 지리산을 거쳐 일본으로 흘러가는 땅의 기운을 막기 위해 일부러 맨땅에 불상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상사 창건 당시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졌으며 보물 제41호로 지정되었다.

실상사 입구 왼쪽 호젓한 산길을 약 2㎞ 정도 오르면 산 중턱에 숨은 듯 보이는 약수암이 있다. 여기에는 보물 제421호인 높이 1.8m, 폭 1.9m의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탱화가 보관되어 있다. 현존하는 6점의 조선 후기 목조 탱화 중에서 가장 간략하며, 입체적 조각 수법이 화려하다.

백장암 삼층석탑은 꼭 찾아봐야 한다. 실상사에서 인월면 방면으로 약 15분 정도 달리면 백장암 삼층석탑 표지판이 보인다. 약 1.1㎞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면 크지 않은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벗어난 이형 석탑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상륜부로 노반·복발·앙화·보개·보륜·수연 등이 찰주에 차례로 꽂혀 있는 온전한 모습이다. 흔치 않은 완전한 상륜부이다.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아 국보 제10호로 지정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황산대첩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 있다. 인월면에서 24번 국도로 운봉면 방면으로 10여 분 달리면 황산대첩비 표지판과 함께 비전마을 입구에 다다른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잦자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왜구 토벌에 나서도록 하였다. 이성계는 우왕 6년(1380) 운봉 황산 일대에서 살육과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섬멸하여 명성이 높아졌다. 이 싸움은 황산대첩이라 불리며, 최영 장군의 홍산대첩과 더불어 왜구를 물리친 고려시대 2대첩이라고 불린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선조 10년(1577)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의 청으로 왕명에 의해 비석을 건립했다. 비문에는 이성계가 아군보다 10배가 넘는 왜적을 대파함으로써 만세에 평안함을 이루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일제강점기 패망을 앞둔 조선총독부가 1943년 민족혼을 말살시키려 비석의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긁은 후 폭파했다. 현재는 깨어진 비석 조각들만 파비각 안에 모아 놓았다. 황산대첩비 서쪽 50m 지점에는 어휘각이 있다. 이성계가 황산대첩의 승전을 기리고자 자신의 이름과 전투에 참여했던 장수 이름을 새겨놓은 바위다. 하지만 이 바위도 일제가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정으로 쪼아놓아 현재는 해독이 불가능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남천 강가에는 죽은 왜구들이 흘린 피가 바위에 물들어 붉은 바위가 되었다는 피바위의 전설도 전해진다.

◆동편제 탯자리와 국악의 성지

황산대첩비 옆에는 비전마을 동편제 탯자리가 있다. 판소리 동편제의 창시자인 송흥록(1780~1863)과 고수로 지내다 형에 버금가는 명창이 된 송광록이 태어난 곳이다. 판소리는 원래 열두 마당이었으나 신재효가 정리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 여섯 마당만 전해진다. 판소리는 섬진강을 기준으로 동쪽(남원, 순창, 구례 지역)에서 유행한 소리는 동편제, 서쪽(담양, 보성, 광주 지역)에서 유행한 소리는 서편제라 부른다. 동편제의 본고장인 남원 사람들은 예부터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가왕'이라 불리는 송흥록은 판소리 200년사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가중독보라 불리는 송만갑(1865~1939)이 송광록의 손자이다. 여류 명창 박초월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앞 느티나무 그늘 밑 '소리쉼터'에서 판소리 한 자락을 감상하면 무더위가 싹 달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가까이에 설립된 '국악성지'에서는 국악 상설공연(매주 수요일 오후 2시), 국악플러스 등 다양한 체험과 공연이 열린다.

예약 문의:http://gukak.namwon.go.kr 063)620-6905.

★Tip

*가는 길: 광주대구고속도로→지리산IC→인월면→산내면→실상사(소요시간 약 2시간)

*실상사 입장료: 어른 1천500원, 그 외는 입장료가 없다. 3곳 모두 주차장은 협소하고 불편하다.

*춘향테마파크(063-620-5789): 광한루원 건너에 있는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향토박물관, 심수관도예전시관, 맹약의 단, 월매집, 동헌 등이 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드라마 '쾌걸춘향'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전주식당(063-626-3362)은 뱀사골 입구에 있다. 2대째 운영하는 50년 전통 식당이다. 150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과 주차장이 여유 있다. 6가지의 반찬이 함께 나오는 산채비빔밥이 일품이다. 1인분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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