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행에 재조명받는 박열·가네코 커플

입력 2017-07-08 00:05:00

문경 생가·기념관 방문객 급증…드라마틱한 항일운동 관심 끌어

박열 의사와 그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의 20대 시절 사진.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제공
박열 의사와 그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의 20대 시절 사진.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제공

문경 출신 독립운동가 박열(1902~1974) 의사와 일본인 부인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항일운동을 다룬 영화 '박열'이 개봉하면서 문경에 있는 가네코의 묘지와 박열 의사의 생가 및 기념관에는 방문객이 급증하는 등 이들 부부의 드라마틱한 항일운동 이야기가 재조명받고 있다.

박열 의사는 1902년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서 태어나 17세 때인 경성고보 학생 시절 3'1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이듬해인 1919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고학 조선 청년들과 함께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특히 일본 황태자 결혼식에서 가네코와 함께 천황 부자 암살을 기도했다.

이 일로 박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기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법정에서 수의가 아니라 조선 관복 입는 것을 관철할 정도였다. 무려 22년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결혼한 가네코는 투옥 3년 만에 의문의 옥사를 당해 박 의사 고향인 문경시 문경읍 팔령리에 묻혔다.

박열 의사는 1945년 해방 이후 풀려나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이봉창 유해봉안 추진위원장을 비롯해 재일거류민단장, 신조선건설동맹위원장을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6'25전쟁 3일 만에 강제 납북돼 1974년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영화의 인기와 함께 최근 박열'가네코 부부를 추모하러 문경을 찾는 일본인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장석욱 박열기념관 학예사는 "일본 문인들은 가네코의 고향인 야마나현에서 그녀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는 추모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며 "박열 부부는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혁명가적 사고를 가진 철학가이자 행동가로 재평가받고 있다"고 했다.

박열의 업적을 기리려는 지역사회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문경시는 지난 2000년 박열의사기념사업회(회장 박인원)를 발족시켜 전시관 건립, 생가(경북도 기념물 제148호) 복원 등 추모사업을 펼쳤다.

문경읍 팔령에 있던 가네코 묘소를 지난 2003년 11월 박열 의사 생가 뒤편(마성면 오천리 샘골)에 이장했다. 2012년 이곳에 건립된 기념관에는 박열 의사 출생과 일대기, 유품과 사료를 전시했다. 최근에는 영화 흥행과 함께 기념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두 배 이상 늘었다.

고윤환 문경시장은 "가네코 여사 묘소는 남편의 고향에 묻혔는데, 의사의 묘소는 북한에 있어 안타깝다"며 "이번 영화 흥행을 계기로 박열 의사 부부 재조명 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펼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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