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소녀, 어른이 되다
박석영 감독 '꽃 시리즈' 완결작
전작 '스틸 플라워' 장면과 연결
느린 전개'절제된 대사'롱쇼트
한 폭 예술사진 같은 풍경 담아
'재꽃'은 독립영화계에서 차세대 시네아스트로 꼽는 박석영 감독의 '꽃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2014년 박석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들꽃'은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음 해에 나온 '스틸 플라워'는 거리에서 홀로 살아가는 소녀가 탭댄스를 추며 희망을 꿈꾸는 영화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하는 '재꽃'은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소녀가 다른 이를 돌보며 또 다른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박석영 감독은 3년간 3부작을 완성하였다. 그 사이 3부작의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 정하담은 영화평론가협회 신인여우상, 들꽃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독립영화계가 낳은 스타로 성장했다. 영화의 시작은 전작인 '스틸 플라워'의 마지막 장면과 연결이 된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삶을 보내는 하담(정하담) 앞에 아빠를 찾는 해별(장해금)이 나타난다. 자신과 닮은 듯한 열한 살 소녀에게 마음이 쓰이는 하담은 해별을 보살핀다. 한편 명호(박명훈)는 해별이 자신의 딸인지 유전자 검사를 하고, 철기(김태희)는 부동산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진경(박현영)과 결혼 준비를 한다. 진경은 철기에게 명호와 함께 모은 돈을 결혼 자금으로 쓰자고 설득하고, 해별이 자신의 딸임을 확신한 명호도 해별과 살 집을 알아본다.
단 6명의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류 상업영화들처럼 긴장감 있게 스토리 전개를 펼치는 영화가 아니다. 느린 전개, 길게 지속하는 쇼트, 음악의 배제와 대사의 절제, 사운드의 단순함, 익스트림 롱쇼트의 활용 등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여운을 충분히 느끼게 연출되었다. 시각적, 청각적 요소에 감각적으로 반응하도록 구성된 것이다. 한국의 여느 시골마을이지만 한 편의 회화나 예술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일상성을 강조하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연극계와 독립영화계에서 탄탄하게 실력을 쌓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다. 아역배우까지 누구 하나 모자람 없이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배어 들어간다.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자립할 수 있게 된 하담은 한결 넉넉해진 마음을 가지고 어른들에게도 베푸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만난 아이 해별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거리에서 서성이며 떠돌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하담과 해별은 이후 붙어다니는 사이가 된다. 아이 하나쯤 받아들일 정도의 인심은 있는 시골마을이고,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처럼 아이 역시 자연스럽게 마을 정착민들과 어울린다.
그러던 중 어른들의 욕심으로 작은 평화가 깨진다. 명호와 철기가 공동으로 모은 돈을 명호가 딸이라고 찾아온 해별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써버리려고 하자 모든 것이 엉클어진다. 철기의 애인이자 부동산 중개업자 진경 또한 철기 몫을 챙기는 것을 넘어서는 행동을 한다. 유사가족을 형성하며 서로 의지하며 살던 이들의 관계는 깨져버리고, 급기야 철기는 명호만이 알지 못했던 비밀을 터뜨린다.
돈 때문에 망가지는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영화 속 해프닝은 부조리한 현실 인간계의 많은 것을 담는다. 어른들이 이권을 놓고 대립하는 동안 하담은 해별에게 소중하게 간직해오던 자신의 탭댄스 구두를 신기고 댄스를 가르친다. 결국 탐욕스러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과 예술이다. 영화가 점점 혼돈을 향해 치닫는 동안 둘이 가로등 아래 추는 소박한 춤은 작은 기쁨의 순간을 선사한다.
스토리 전달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의 결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큰 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극장가를 장악하고 있는 이때, 천천히 전개되는 서정적인 영화를 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가 오랫동안 극장에 걸리길 바란다.
미숙한 아이에서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는 소녀로,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고 타인을 보살피는 어른으로 성장한 3부작의 마지막은 희망을 말한다. 결국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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