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을 보면 임금이 내린 사약(賜藥)을 죄인이 마시고 피를 토하며 죽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이는 드라마적 연출일 뿐 사약을 마셔도 각혈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 사약은 다른 극약에 비해 독성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어명을 받은 금부도사는 죄인에게 사약을 먹인 뒤 군불 지핀 방에 가두고 문에 대못을 박았다. 사약 효과가 빨리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다. 사약을 마신 죄인은 절절 끓는 온돌 위에서 고통스럽게 죽었다.
사약의 재료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사약의 제조법은 비밀에 부쳐졌고 성분에 관한 문헌도 없다. 비상 또는 독이 있는 나무에서 추출한 물질 등이 재료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그런데 죄인이 사약을 마시고도 죽지 않는 황당한 일이 종종 벌어졌다. 이 경우 금부도사 일행은 죄인을 교살했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은 83세의 나이에 사약을 받았는데, 워낙 건강 체질인데다 독극물이 약간 들어간 약재를 복용하고 병이 낫는 과정에서 내성이 생긴 건지 사약 두 사발을 들이켜고도 멀쩡했다. 명색이 정승까지 지낸 사람의 목을 조를 수 없었던 금부도사가 "대감, 제발 죽어주십시오"라며 애원하기에 이르렀고, 송시열은 입 안에 상처를 내고 사약 한 사발을 더 들이켜고서 죽음을 맞았다.
어떤 이에게 사약은 음료수(?) 같았다. 중종 때의 문신 임형수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았는데, 술을 가득 탄 사약을 18사발이나 마시고도 죽지 않는 바람에 금부도사 일행이 밧줄로 목을 졸라 죽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따지고 보면 사약은 유교사회인 조선의 사대부에게 부여된 일종의 예우성 사형집행이라 할 수 있다. 교수형이나 참수형과 달리 시신을 온전히 수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손들은 사약을 마시고 죽은 죄인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하고 제사도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누려 속칭 '기춘대원군'으로 불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법정에서 한 발언이 화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를 놓고 그는 "박근혜정부는 망한 정권, 사약이라도 마시고 깨끗이 상황을 끝내고 싶다"며 결기를 보였다. 모종의 심경 변화가 있나 싶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고 그에게 검찰은 7년을 구형했다. '사약'이라는 비장한 단어마저 입에 담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말은 '영혼 없는' 수사(修辭)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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