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기관지염…상처 뿐인 의인, 생활고
니말(39'스리랑카) 씨는 좀처럼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그가 뱉어낸 분비물에는 검은색 이물질이 섞여 있었다. 니말 씨는 "15분 가까이 기침을 계속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했다.
지난 2월 니말 씨는 불이 난 집에 맨몸으로 뛰어들어가 90대 할머니를 구했다. 소중한 생명을 살린 대가(?)는 컸다. 얼굴과 목, 팔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유독가스를 마신 기관지의 섬모가 녹아버리고 말았다. 화상은 한 달 만에 회복됐지만 폐는 회복이 힘든 상태다. 만성기관지염 진단을 받았고 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폐섬유화로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보건복지부는 니말 씨를 의상자(義傷者)로 선정했지만 남은 상처는 명예보다 깊다. 불법체류자 신분이 알려진 탓에 한 달간 화상치료를 하며 받은 건강보험 급여 800만원을 도로 갚아야 한다. 매주 한 차례씩 받는 병원 치료비도 모두 고스란히 내야 한다. 니말 씨는 "앞으로 1년간은 일도 못하고 병원에 다녀야 한다. 치료가 끝나면 스리랑카로 쫓겨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불길 속 맨몸 투혼, '영웅'은 됐지만…
지난 2월 니말 씨는 경북 군위의 한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어느 날, 니말 씨와 마을 사람들에게 동네 집배원이 달려와 "조 할머니 댁에 불이 났다"고 알렸다. 니말 씨는 곧장 화재 현장으로 향했다. 화염이 집 전체를 뒤덮은 상황에 집 안에는 조 할머니가 갇혀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유리창을 깨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시며 집 안을 뒤졌고 의식을 잃기 직전이던 조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는 조 할머니를 둘러업고 불길 속에서 탈출했다. 니말 씨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 주저할 틈 없이 뛰어들어갔다"며 "할머니를 찾아서 모시고 나오는 15분이 너무나 길었다"고 회상했다.
곧장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한 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다. 병원비 1천300만원 중 800만원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 발각되면서 부정수급한 800만원을 반환할 처지가 됐다. 그는 퇴원 후 대구 달서구의 스리랑카 사원에 머물고 있다. 그의 잠자리는 사원 한쪽에 마련된 3.3㎡짜리 쪽방이다. 니말 씨는 "할머니를 구한 후 치료를 받느라 일을 하지 못해 스리랑카에 생활비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나만 바라보는 다섯 식구가 걱정된다"고 했다.
◆건강 잃고 스리랑카로 쫓겨날지도
스리랑카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하던 니말 씨는 2013년 7월 한국으로 건너왔다. 아버지가 폐질환으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니말 씨의 월급만으로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였다. 유일한 재산인 땅을 팔아 700만원을 마련한 뒤 어렵게 취업비자를 받았다. 대구 인근의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체류 기간 만료일이 다가오면서 해고당했다. 지난해 7월 결국 체류 기간을 넘겼고,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다. 니말 씨는 "겨우 취업한 다른 공장에서는 두 달치 월급을 받지 못했다"며 "지난해 12월부터 월급을 제대로 주는 과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스리랑카 가족의 생계는 휘청대고 있다. 지난해 10월 어머니가 위암 수술을 받으면서 큰돈이 들어간데다 니말 씨의 수입도 끊어졌기 때문이다. 니말 씨 역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매주 병원비만 10만원을 훌쩍 넘긴다. 니말 씨의 친구들은 "좋은 일 했다가 직장도 잃고 건강도 잃었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속상해한다.
니말 씨는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계속 한국에 머무르고 싶다"고 했다. "스리랑카로 돌아간다 해도 이젠 직장을 구할 수 없어요. 스리랑카엔 젊은 사람이 많아서 저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고용하지 않아요. 게다가 전 건강도 좋지 않으니 실직자가 될 게 분명해요."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