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33>-엄창석

입력 2017-07-03 15:32:40

본채 모퉁이와 붙어 있는 곳간에서 내일 쓸 상(床)을 꺼내는 중이었다. 기녀 하나와 집일하는 초로의 집사가 곳간 안에 보관하고 있던 상을 밖으로 나르면 애란이 상에 물걸레질을 했다. 3백 명이 온다면 상이 적잖게 필요할 것이다.

계승은 애란이 기녀가 되었단 말을 들었지만 실제 기루에서 처음 만났다. 물걸레질을 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변명처럼 입을 열었다.

"광문사 사장님이 여기 가서 일을 좀 도우래."

애란은 계승을 쳐다보지도 않고 길고 아름다운 눈썹을 내린 채, 오래되어 흙처럼 상에 달라붙은 먼지덩어리를 걸레로 박박 문질렀다. 기녀임이 꼼짝없이 드러났는데도 그녀가 당황하지 않는 것 같아서 계승은 당황했다. 애란이 몸을 돌려 대야에 걸레를 넣었다. 그녀가 지나치게 오랫동안 걸레를 빠는 것을 보고, 이 순간이 오는 것을 - 기루에서 만나게 될 것을 -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란이 사랑스러웠다. 계승은 한 발짝 다가갔다. 팔을 뻗으면 어깨를 만질 수 있는 거리였다.

"저기...... 곳간에 들어가 상을 날라줄래요?"

애란이 걸레를 빨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그를 보지 않고서. 집사와 맞잡고 상을 옮긴 기녀가 물걸레를 집어 들었고, 계승은 집사를 따라 곳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계승은 곳간에서 상을 꺼내 애란 앞으로 옮겼고 청소를 마친 상을 안채로 날랐다. 애란을 지척에 두고서, 마치 파도처럼 덧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상을 날랐다. 상을 스무 개쯤 옮겼을 때, 달구지가 도착했다. 계승은 애란에게 손도 흔들지 못하고 내비동 도살장으로 떠났다.

이튿날 9시쯤부터 문회 사람들이 광문사로 모이기 시작했다.

백여 평 되는 마당 가운데에 멍석을 깔았고 한쪽에는 의자를 놓아서, 신분과 나이에 따라 적절하게 멍석이나 의자를 선택해서 앉도록 배치했다. 먼저 온 사람들이 멍석에 올랐다. 멍석 위 여기저기에서 맞절을 하는 광경. 박장대소를 하고, 대구로 오면서 벌어진 일을 설명하고, 상대방에게 겸양과 양보를 다투며 서로 의자에 오를 것을 강권하는 따위로 마당이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그러다보니 회원들이 거의 입장을 마쳤는데도 앞에 놓인 의자는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날씨는 춥지 않았다. 같이 온 종자들이 담장가로 늘어서 있고 마당에는 백로가 내려앉은 듯 하얀 옷들이 햇살을 받아 눈에 부셨다. 종자들까지 합쳐 사오백 명이 광문사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지만 봉화 예천 영덕 상주 같은 먼 지역에서 달려왔다는 피로와 열망으로 마당의 풍경은 더없이 장중해보였다.

계승은 대문 앞에 서서 뒤늦게 오는 인사들에게 자리를 안내하면서,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일본 수비대 군영의 동향을 의식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방해는커녕 남문이나 관풍루 아래에서 수비대원들이 경계 자세만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광문사의 위용은 대단했다. 단순한 출판사가 아니란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영향력이 크다는 게 놀라웠다. 광문사가 설립된 것은 불과 한 해 전이었다. 한 단체의 힘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상스러울 만큼 가열한 취회(聚會)였다.

"대구광문사는 지금까지 도내 곳곳에 배움터를 마련하여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앎의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 지식은 왕조가 수백 년 간 우리를 인도한 것과 전혀 다른 종류입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은 눈을 높이 들어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방이 동방을 힘으로 제압한다고 슬피 울거나 그냥 앉아서 분노할 까닭이 아니란 사실을, 젊은이들이 알았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홀로 있지 않습니다. 세계는 동방과 서방으로 나눠져 있지 않아요! 압제당하는 나라와 압제하는 나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덩어리입니다...... 대구광문회는 더 넓은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 문회도 대구가 아니라 세계의 일부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에 대구광문회의 명칭을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변경할 것을 제안합니다......"

사장 김광제가 앞에 나가 긴 연설을 했다. 그런 논의는 한두 달 전부터 있었다. 지난해 일본 통감부가 들어선 후로 정부의 자금줄이 차단되자 광문사는 출판 교육 업무가 지지부진해졌다. 이런 현상은 다른 도시의 계몽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김광제 사장은 대한제국 정부나 일본 통감부에 원조를 사정할 거 없이 외국으로 눈을 돌려 중국과 일본의 민간단체와 교류하면서 지식 사업의 방향을 모색하자고 했다. 막힌 계몽운동을 뚫기 위해 새로운 판을 짜보겠다는 김광제의 의도는, 나중에 곱사등이 오돌매가 빈정거렸듯이 꿈과 같은 도안(圖案)이었다. 문제는 각처에서 몰려온 문회 회원들이 김광제의 달콤한 꿈을 만장의 박수로 통과시킨 직후에 나왔다. 광문사 부사장인 서석림은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해 국가 빚부터 갚자는 국채(國債)의 보상(報償)을 제안했다. 국가가 빚을 지고 있는 한 타국의 훼방을 끊임없이 받게 되고 따라서 새판을 짜는 게 불가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다분히 추상적이었던 김광제의 도안에 홀연 현실감이 부여되었다. 그러니까 국가 빚부터 갚자는 서석림의 제안은 김광제의 도안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현실적인 첫 걸음인 셈이었다. 모든 빚을 변제하고, 새로 시작해보자는.

"농루에 가보시게. 점심 준비가 덜 됐으면 빨리 하도록 재촉해요."

문 앞에서 김광제가 말한 새판의 도안을 어렴풋이 머리에 그리고 있는 계승에게, 염농산이 다가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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