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은 맛없다!…한식의 품격

입력 2017-07-01 00:05:04

늘 그래 왔듯 소금 한 숟갈을 푹 떠넣고 휘휘 젓는다. 한소끔 끊인 다음 맛본 국물 맛이 가관이다. 소금물이다. 순두부찌개가 되고 싶었던 빨간 소금물은 회생 불가능 상태가 됐다. 소금 입자 탓이었다. 굵은 소금과 달리 고운 소금은 입자 사이에 틈이 거의 없어서 한 숟갈에 들어 있는 소금량이 더 많다. 재료의 성질을 간과한 벌로 야심 차게 준비한 순두부찌개는 '순두부국'이 돼버렸다.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 나왔다. 건축 학도보다 음식 평론가가 더 어울리는 남자, 이용재 건축 평론가가 '한식의 품격'을 펴냈다. 10여 년 유학 생활 동안 외국 음식에 찌들었을 법도 하지만 맛을 느끼고 음식을 해부하는 그의 혀끝 감각은 상상 이상이다. 그는 한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비평을 골랐다. 가차없는 비판으로 한식이 '맛없다'고 하는 그는 음식 평론계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어머니의 '손맛'과 뿌리 깊은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한식 애호가가 읽기에는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한 지적도 보인다. 음식은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책의 곳곳에서 참기름으로 무친 음식, 만능양념장 등은 물론이고, 한식의 성역과 같은 곳도 들쑤신다. 몸에 좋은 전통 발효식품 김치, 차례상의 터줏대감 전까지 건드리면서 모든 음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이쯤이면 한식 '모두까기' 책인가 싶다.

그러나 치밀하다. 그는 건축 자재처럼 음식 재료를 분석하고, 설계하듯 조리법을 다룬다. 재료의 결정형, 끓이는 온도, 삭히는 시간, 담는 용기 등 음식 맛을 좌우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전부 다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가도 다음 장을 보게 된다.

저자가 본격적인 비평에 앞서 소개한 음식은 '인스턴트 라면'과 '평양냉면'이다. 가장 먼저 소개된 한식이 인스턴트 라면이라니. 더군다나 그는 라면을 한국적인 맛의 대량생산을 이끈 한식으로 평가했다. 조리법대로 끓이면 누구나 얼큰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음식이고,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대표적인 한식이라고 한다. 이어 소개된 평양냉면은 한 술 더 뜬다. 어딘가 허전한 감칠맛이 일품인 맑은 고깃국물에 뚝뚝 끊어지는 메밀면. '미식가의 미식'이자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음식'으로 소문난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은 엄마 손이 절대 낼 수 없는 맛이지만, 그 심심하고 밍밍한 맛이 새로운 조리법을 가로막는다고 말한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맛의 원리', 2부는 '조리의 원리'로 이뤄졌다. 1부에서 삼겹살 수육 삶기와 만능양념장을 통한 맛내기에 대해 살펴보고 나서 미각 수용체로 감지되는 다섯 가지 맛(짠맛'단맛'신맛'쓴맛'감칠맛)을 설명한다. 그는 조미료의 핵심인 소금이 한식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간장'고추장에 밀려나거나, 시원함을 가장한 뜨거움에 밀린 현실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싱겁다'와 '짜다'의 사이에 있을 적당한 단계에 대한 감상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저자는 단맛에 대해서도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침을 가한다. 단맛을 강조하면서 맛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설탕을 쓸 때는 백설탕을 사용할 것을 독려한다. 흑설탕, 갈색 설탕이 몸에 좋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뒤엎는데, 억지로 섞은 캐러멜 향. 미네랄에 차이가 없는 당밀 성분에 대한 그의 지적은 꽤 설득력이 있다. 커피'김치'나물이 가진 신맛과 쓴맛, 육수의 감칠맛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그의 눈은 밥상으로 향한다.

2부는 밥'반찬'김치'국물'볶음'직화구이'활어회'전'분식'술'후식 등 우리 밥상에 오른 음식들의 조리법에 대한 이야기다. 탄수화물 공급원으로서 밥보다 빵이 편리하다는 점, 모두 맛보진 않지만 없으면 젓가락이 허전한 반찬과 밥을 중심으로 한 반찬 문화를 통해 1인 가구, 저녁 없는 삶, 혼밥족을 위한 식단의 변화에 대해 말한다. 곧이어 저자는 '전통적인 것'이라는 울타리에 머문 김치를 재조명한다. 한식상에서 빠질 수 없지만, 미생물 관리'보관 등 발효과학에선 뒤처진 음식문화 콘텐츠에 대한 지적을 서슴지 않는다. 구워먹든, 무쳐먹든, 소스의 원료가 되든, 김치가 맛 보정 요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시행착오와 반복을 최소화한 과학적 비결의 개발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찜'과 '닭도리탕'의 간극, 그리고 '닭볶음탕'이 닿을 수 없는 '닭도리탕'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국물을 주식으로 삼은 우리 식문화의 무신경함을 꼬집는다. 그의 지적은 활어회와 싱싱회, 전과 튀김 사이에서도 확인된다. 한껏 기름을 머금었지만 튀김이 되지 못해 눅눅한 전, 산 자보다는 죽은 자를 위해 존재하는 그 음식을 향한 그의 애정은 한식과 한식문화의 변화 가능성에 녹아 있다.

후반부에서 그는 한식 발전을 위한 20가지를 제언한다. 책에서 소개된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 우리 음식을 신격화할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에 맞춰,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것을 주장한다.

스마트폰과 알파고가 지배하는 시대다. 하루 한 끼가 전부고, 1인가구'핵가족이 사라진 저녁 시간을 돌이켜 내는 사회다. 먹고 싶은 것을 찾아 하루 만에 세계를 누빌 수 있는 세상이다. 음식에 성역을 둘 수 없는 이때,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남에겐 자리 잡지 못한 음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아 그는 말한다. 누구도 하지 못한 뼈아픈 직설, 알던 것과 다르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그의 촌철이 겨누는 음식문화를 들여다보자.

"밥보다 빵, 흑설탕보다 백설탕, 냉면 먹을 땐 '스뎅'그릇보다 사기그릇을…." 53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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