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공설운동장이 처음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달성공원이나 각급 학교 운동장에서 크고 작은 체육행사가 열렸다. 일제는 현재의 중구 동인동인 동운정(東雲町'히가시구모마치)에 첫 공설운동장을 세웠는데 관유지 2만4천㎡(약 7천300평)에 야구장과 정구장을 지어 1931년 6월 개장했다. 옛 대구여고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안이다.
모두 3천엔의 사업비가 든 이 공설운동장은 당시 대구부(府)의 재정 곤란으로 계획보다 크게 축소된 규모였다. 이마저도 1934년 세무감독국 청사 건립을 위해 운동장 부지 일부를 반환하게 되자 3년 만에 새 운동장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입지 논란 끝에 세워진 운동장이 1937년 대명동 영선못(지금은 매립됨) 인근의 대구 종합운동장이다.
일본인 거류민들 입김이 크게 작용해 결정된 이 운동장은 총 면적 9만5천여㎡(2만9천 평)에 육상장과 야구장, 정구장 등으로 이뤄졌다. 모두 1만1천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하지만 운동장 서북쪽 언덕(현 남구종합사회복지관 인근)에 세워진 '충령탑'이 운동장을 굽어보는 형국이었다. 이 탑은 일제가 만주사변 전사자를 위해 세운 추모탑으로 경북도 당국이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폭파해 없앴다.
광복과 함께 공설운동장의 운명은 또 한 번 갈렸다. 미군정 시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공설운동장이 미군 주택지로 쓰이면서 옮겨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현재 주한미군과 군속의 거주지와 외국인학교가 있는 '캠프 조지' 자리다. 여기서 옮겨온 터가 바로 북구 고성동이다. 1948년 4월 대구운동장으로 개장해 1962년 대구종합경기장, 1976년 대구시민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대구 공설운동장은 굴곡진 역사를 써왔다.
60년 넘게 대구 체육의 요람이자 시민과 애환을 함께 해온 대구 공설운동장이 이제 또 다른 변신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주경기장이 철거된 데 이어 그제 야구장 철거를 시작했다. 대구복합스포츠타운 계획에 따라 내년이면 대구FC 전용구장과 사회인 야구장, 다목적 실내체육관 등이 새로 건설된다. 사업비 565억원을 투입하는 리모델링 작업이다.
운동장 하나에도 시민들이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평소 의식하지 못하는 소중한 역사를 보듬고 있다. 새 공설운동장도 시민이 아끼는 유형의 역사문화 자산이자 시민 체육의 중심지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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