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외국인과 결혼을 하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광경은 이제 흔하다. '지구촌'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어느덧 전 세계 사람들은 서로 교류하며 삶의 터전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행복하기만 한 글로벌 사회는 아니다. 단지 국경을 초월한다는 것이 다를 뿐, 여전히 사람들 간의 다툼과 상충하는 이윤을 두고 각종 분쟁이 발생하는 여느 평범한 삶의 모습이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 Hague Conference on Private International Law)는 국제무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적, 상업적 분쟁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는 주요한 국제기구다. 상사(商事), 국제민사소송절차, 아동보호, 혼인 문제 등을 아우른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는 일반인은 물론 법조인들에게조차 다소 생소하지만 헤이그에 소재한 가장 오래된 국제기구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헤이그국제사법회의에 회원국으로 가입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태평양 주간(Asia Pacific Weeks) 2017'을 위해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는 크리스토프 베르나스코니(Christophe Bernasconi) 헤이그국제사법회의 사무총장을 네덜란드 헤이그 현지 집무실에서 만났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가 다루는 법률 이슈들을 보면 상당히 광범위하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의 존재 당위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헤이그국제사법회의는 개인의 삶에 즉시적 그리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국제적 사안에 관여한다.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법적 분쟁은 각 당사국 간의 상이한 법이나 사법절차로 인해 해결이 쉽지 않고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때 어느 나라의 법이 적용되어야 할지, 어떤 재판소의 결정이 필요한지, 법률 승인이나 집행은 어디에서 이뤄져야 할지 등의 이슈가 발생하며 궁극적으로는 각국의 공조하에 국제적 사법 분쟁이 원활히 해결되어야 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헤이그국제사법회의가 일종의 '신호등'(traffic sign)이 되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세계는 점점 작아진다.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간다. 그만큼 국경을 넘거나 여러 나라의 사법절차가 한꺼번에 포함되는 이슈들도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글로벌 비즈니스나 국제결혼 사례가 많아질수록 국제사법 케이스도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는 국제사법 분쟁에서 발생하는 여러 의문사항이나 모호한 법적 요소들을 해결할 수 있는 일정하고 조화로운 법을 기반으로 원칙과 방식(협약)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각국에는 국제법 전문가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의 역할과 어떤 차별성을 둘 수 있나.
▶물론 나라별로 국제법 전문가들이 있기는 하다. 문제는 그들이 제공하는 법적 해결방안이 나라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는 나라별 원칙을 조화롭게 적용함으로써 국경을 초월하더라도 동일한 해답을 얻도록 한다는 게 다르다. 또한 우리는 재판소가 아니기 때문에 국제법 재판을 직접 실시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협약을 제정해 가입국을 모집하고 가입국들은 협약이 제공하는 각종 원칙에 따라 혜택을 볼 수 있다.
-현재 헤이그국제사법회의 협약 가입국 상황은 어떠한가.
▶처음 헤이그국제사법회의가 만들어진 이래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한국을 포함해 현재 82개국과 EU가 회원국이다. 여전히 아프리카, 중동, 그리고 몇몇 아시아 국가들은 회원국이 아니지만 다양한 협약 가입국(connected states)은 150개국에 달한다. 고무적인 것은 점점 협약 가입국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현재 4개 협약에 가입해 있으며 조만간 비준을 받게 되면 헤이그아동입양협약(Hague Adoption Convention) 가입국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헤이그국제사법회의 '아시아 태평양 주간(Asia Pacific Week) 2017'이 개최된다. 한국이 어떤 점에 주목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나.
▶무엇보다도 한국은 헤이그국제사법회의 협약과 관련해 계획을 세우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믿음직한 국가다. 아시아 태평양 주간과 같은 만남과 토론의 장이 열림으로써 협약 가입국들의 경험이 공유되는 것이야말로 비가입국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새로운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가입국 간의 결속을 강화하며 가입국 간의 협력을 증진시키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2015년 한국에서 홀트아동복지회 창립 60주년 기념차 한국을 방문해 강연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입양아동 누적수 1위로서 '아동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또한 여전히 적지 않은 아동의 국내외 입양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 내의 헤이그아동입양협약 비준이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데다가 협약의 장점을 피력하는 자리였다. 한국에서도 이미 유명해졌고 입양아였던 수잔 순금 콕스(현재 홀트국제아동복지회 부회장)도 헤이그국제사법회의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해외 아동입양은 국내에서 더 이상의 해법이 없을 때 추진되어야 하며 국가 간에 이뤄지는 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는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지만 실질적 이행에 관한 내용이나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헤이그아동입양협약과 같은 추가적인 협약이 필요하다. 물론 헤이그아동입양협약은 국내 입양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해외 입양이 제한된다는 우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입양을 얼마나 하는지 여부보다는 입양 과정에서 아동이 보호받을 수 있는 원칙과 장치가 잘 마련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헤이그아동입양협약은 입양을 장려하거나 혹은 억제하는 입장의 차원이 아니다. 입양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출신국과 수령국 간의 상호 협력을 강화하며 출신국의 입양 재판을 수령국에서 승인하도록 함으로써 아동이 중간에 오갈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나 입양 재판 및 절차를 반복하는 것을 방지한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헤이그아동입양협약이 어떤 식으로 아동의 권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가.
▶바로 그게 가장 중요한 점이다. 헤이그아동입양협약은 기본적으로 당사국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진행되며 어떤 나라도 협약을 강요받지는 않는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 초창기 시절에는 회원국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 간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지금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회원국이 늘어난 지금은 동의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국제교섭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 협약은 당사국이 협약의 특정한 측면에 대해 유보나 선언, 즉 이를 거부하거나 수용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준다. 혹은 원하는 국가와만 선별적으로 협약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결국 헤이그국제사법회의는 당사국 간의 분쟁 사안과 해결 방안을 확인하고 협상이 수월히 진행되도록 독려하며 적절한 지원 방안을 찾는 등 교섭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돕는다. 아동 입양 사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몇 년 전 '아동탈취협약'(Child Abduction Convention)에 가입했다. 각 나라별로 아동의 권리와 가족의 가치를 상이하게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협약을 이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의 주된 역할은 상이한 법률 시스템이나 당사국 간의 차이점을 이어줄 수 있는 다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당사국 간 협상이 조화롭게 이뤄지도록 하는 데 집중할 뿐 어느 나라의 가족에 대한 가치가 더 나은지, 가족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 혹은 결혼의 개념이 무엇인지 등을 제시하고 이를 도입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가령 국제결혼을 한 부모 사이에 자녀가 있는데 둘이 이혼을 하면서 자녀가 부모 중의 양육권자와 지내게 됐다고 하자. 어느 날 양육권이 없는 부모가 양육권자의 동의 없이 자녀를 데리고 다른 나라로 출국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협약은 그 아동이 원래 양육권자와 살고 있던 나라로 되돌려 보내지도록 보장한다. 즉 협약의 포인트는 아동을 원래 위치로 돌려보냄으로써 관계 당국이 자국의 법을 통해 양육권이나 감호권 등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가 직접 재판을 열어서 국제 양육권 문제를 다투는 것이 아니며 아동탈취협약을 이행하여 국제 사법분쟁이 잘 해결되고 당사국 간 협조체계가 강화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헤이그는 명실 공히 국제법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토비아스 아서(Tobias Asser) 경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네덜란드의 법학자인 그는 헤이그국제사법회의 설립자로서 국제사법규칙을 점진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염원으로 1893년 헤이그국제사법회의 첫 회의를 개최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외에도 그는 만국평화회의에서 국제평화를 위한 국제기구 설립을 주도했고 특히 헤이그 '평화의 궁'(Peace Palace) 안에 있는 상설중재재판소(PCA: 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와 교육기관인 헤이그 아카데미 등의 설립을 주도하는 등 국제평화증진에 힘썼다. 그 결과 토비아스 아서 경은 191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네덜란드 정부의 주도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총 6번의 헤이그국제사법회의가 개최됐으며 1951년 7차 총회에서 채택된 규정이 1955년부터 발효됨으로써 상설적인 국제 간 정부기구가 됐다. 더불어 헤이그국제사법회의가 다루는 의제도 혼인이나 이혼 문제를 넘어 아동의 보호, 국제사법공조, 국제거래 등으로 확대되어 왔다.
여기에 더해 네덜란드 정부는 국제적 법기구의 설립과 운영이 국제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강화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왔다. 바로 이런 열린 인식이야말로 헤이그를 국제법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헤이그에 소재한 평화의 궁은 국제정의와 국제평화를 지향하는 이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그런 국제기구로서 최초로 출발한 것이 바로 헤이그국제사법회의이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 회원국으로서 한국은 어떻게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이 활발하게 회원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면 된다. 한국은 헤이그국제사법회의에 법조인이나 우수한 학생 등 자국의 인재를 파견해 오고 있다. 이런 관심이나 노력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또 하나는 헤이그국제사법회의가 앞으로 국제적으로 팽창하고 좀 더 포괄적인 업무를 효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인적 자원이 좀 더 수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는 각 회원국이 출연한 재원으로 운용되는데 이점을 각 회원국이 좀 고려해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헤이그국제사법회의에서 일할 수 있을까.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꽤 있다.
▶이곳에 파견 형식으로 오는 판사들도 있지만 반드시 법조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국제 관계나 관련 업무를 이해할 만한 전공지식이 있는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도 인턴 자격으로 근무한다. 마침 올여름 한국의 몇몇 대학과도 교류협약(cooperative agreement)을 맺을 계획인데 한국 학생들이 헤이그국제사법회의에 와서 학술연구를 수행하고 인턴십 기회도 갖게 할 목적이다. 현재 이곳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은 10명에서 12명 선이다. 앞으로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이 이곳에서 함께 일하고 헤이그국제사법회의의 존재감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한국의 법조인이나 학생들도 언제나 대환영이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李대통령 "위안부 합의 뒤집으면 안 돼…일본 매우 중요"
국회 법사위원장 6선 추미애 선출…"사법개혁 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