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글자 마모 판독 어려워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울릉도 수토사 각석문이 발견됐다. 매일신문이 지난 21일부터 매주 한 차례씩 보도하고 있는 '울릉도 개척사(史)' 관련 취재 중 새롭게 확인된 사실이다.
조선은 1694년(숙종 20년) 삼척첨사 장한상을 울릉도에 파견한 것을 계기로 정기적인 수토(搜討) 정책을 펴왔다. 1693년 안용복 사건 이후 조선이 삼척영장과 월송만호를 수토사로 임명해 2~3년마다 울릉도와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국토영유권 확보를 위한 국가정책이었다. 장한상 이후 울릉도에 수토관을 파견한 기록은 30여 차례 정도다. 이 가운데 '삼척영장~월송만호~삼척영장' 식으로 이어지는 정기적인 수토 기록은 '김최환(1801년)~박수빈(1803년)~이보국(1805년)'이 유일하다.
이번에 발견된 각석문은 울릉군 서면 태하리 태하항 왼편 대형 암반 아래쪽에 있다. 만호 박수빈(萬戶 朴守彬), 군관 안태관 안인강(軍官 安㤗寬 安仁弜)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심하게 마모된 탓에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대다수다. 월송만호 박수빈이 1803년(순조 3년) 수토관으로 울릉도에 들어와 자신과 수행원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박수빈이 울릉도를 다녀간 사실은 '비변사등록'과 '승정원일기' 등 문헌에만 남아 있었으며, 특히 이들 일행이 새긴 각석문의 존재 여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 각석문은 기존 '태하리 각석문'으로 알려진 것과 같은 암반 한쪽에 새겨져 있다. 기존 태하리 각석문 조사에서는 1801년과 1805년 각각 수토관으로 울릉도를 다녀간 삼척영장 김최환'이보국의 이름만 공식적으로 확인한 상태였다.
새로 확인한 각석문은 구미에 사는 회사원 심충성(40) 씨가 지난해 12월 이곳을 방문한 뒤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며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기자는 심 씨의 자문을 받고 지난 24, 25일 현장에서 20여 차례 탁본을 떠 글자를 확인했다. 워낙 마모가 심해 '만호 박수빈'이란 글씨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심 씨는 "비석에 관심이 많아 3~4년 정도 다니다보니 바위글씨에도 관심이 생겼고, 태하리 각석문을 찾게 됐다. '만호 박수빈' 등의 글씨가 어렴풋이 보이길래 옛 문헌을 찾아 확인한 뒤 인터넷에 올렸다. 해당 부분이 아직 판독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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