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블라인드 테스트가 핵심이 아니다

입력 2017-06-28 00:05:00

문재인 대통령이 하반기부터 공무원과 공공 부문의 채용 시 이력서에 학력이나 출신지 등을 기재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제를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대기업 등 민간 부문에도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을 권유했다.

출신이 아닌 실력 중심의 채용을 주장한 것이어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이 인재를 뽑는 하나의 방편이 되어야지 원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좋은 사람을 뽑고자 하는 조직의 고민에 대해 이렇게 쉽게 처방을 내리면 안 된다.

그 사람의 과거 이력을 보지 않고, 실력을 판단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나의 아둔한 머리로는 세 가지가 떠오른다. 시험, 면접 또는 추천이다.

만약 시험으로 실력을 가린다면 구직자는 채용을 위해 거듭거듭 시험을 봐야 한다. 회사에서도 출제를 하고, 감독을 하고, 채점을 해야 한다. 다양한 측면의 능력을 평가하려면 시험의 유형도 다양해져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자격시험을 치르고, 그 점수를 회사로 제출하는 방안이 있지만 학문에 치중해야 할 대학이 입시학원화되니 심각한 문제가 된다.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학과는 조만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격시험이 급변하는 세상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울 것이고, 회사는 또 다른 평가 기준을 가지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한 실력이 수년, 십수년간 기록된 것이 졸업장이고, 성적표다.

몇십 분간의 면접을 통해 실력을 판단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임기응변이 뛰어난 사람이 선발될 가능성이 높고, 외모의 영향을 받기 쉽다. 또한 면접 과정에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면접자가 거짓말하는지 여부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 결국 제출한 서류가 아닐까. 면접은 소통 능력을 판단하는 도구이지, 사람이 가진 실력을 제대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추천인데, 온정주의에 치우친 우리나라는 추천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낮다. 또한 개인의 성품이 아니라 특수한 분야에서의 실력은 가까이서 그를 가르친 사람이 하는 것이 맞을 것이고, 추천자를 보는 순간 결국 출신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더 큰 우려는 추천은 영향력 행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정부에서 가장 싫어하는 적폐 중 하나다.

또한 추천자가 거짓으로 추천할 때 이를 검증할 방법 역시 제출한 서류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르는 일이 허다하다.

결국 시장에 맡겨야 한다. 학력이 회사 발전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알아서 학력 차별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학력이 회사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에 조금이라도 뛰어난 인재를 뽑고자 하는 회사의 노력을 함부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시장경제하에서 대학(또는 고등학교)들은 자기 학교의 졸업장이 특정 분야의 탁월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코딩을 잘 가르치는 학교,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는 학교, 글로벌 능력이 뛰어난 학교, 성실한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 그 학교 나온 학생이면 보지도 않고 뽑는 학교(내지 학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교수들이 많아지고, 그러한 교육에 충실했던 학생이 좋은 성적표를 제출할 수 있다면 회사는 당연히 그런 학생을 뽑아야 한다.

결국 기업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은 블라인드 테스트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인재를 뽑는 것이다. 인재를 뽑는 노력에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말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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