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좁은 지구촌에서 평화를 상상하다

입력 2017-06-27 00:05:11

경북대(석사)·모스크바 국립사범대(박사) 졸업
경북대(석사)·모스크바 국립사범대(박사) 졸업

유럽서 며칠 새 학과 학생 두번 만남

확 넓어진 젊은이 삶의 무대 실감나

인간 용광로 런던 테러 잇따라 발생

얽히고설킨 갈등 우리와도 연결돼

안식년을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서 보내고 있다. 너무 더워지기 전 여행을 하는 게 좋다는 이탈리아 교수님들의 충고대로 6월 초 피렌체와 근교 토스카나 지역을 둘러보았다. 관광대국답게 이탈리아는 천혜의 자연과 고대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까지 이어져 온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돼 있고, 전 세계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어느 날 피렌체 거리를 산책하는데 무심코 눈이 마주친 한 여학생이 깜짝 놀란다. 우리 학과 학생이다. 러시아 교환학생 과정을 마치고 귀국 전 잠시 유럽 여행을 하는 중이란다. 참 좁은 세상이다.

세미나 참석차 6월 중순 잠시 런던에 왔다. 숙소에 짐을 풀고 코벤트 가든 쪽으로 산책을 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북적인다. 커피라도 한잔 마실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누군가 용수철처럼 달려와 손을 잡아 흔들며 반색한다. 작년 여름 러시아 봉사활동을 같이 갔던 학생이다. 몰타에서 해외인턴 과정을 마치고 영국에 여행 온 지 이틀째란다. 반가워하는 그 친구와 점심을 먹고 맥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구 중앙통도 아니고 유럽 대도시에서 며칠 새 두 번이나 우연히 아는 사람을 보다니, 참 좁은 세상이다.

유럽에서 안식년을 보낸다니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최근 유럽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다. 이슬람국가(IS)의 기획 테러뿐만 아니라, '외로운 늑대'로 불리는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이민자들의 자살 테러 사건으로 곳곳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특히 영국에선 라마단 기간에 맞춰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를 시작으로 런던브리지 차량 테러가 발생했다. 그리고 며칠 새 파리와 브뤼셀에서 연달아 테러가 시도되면서 유럽 전역에 공포가 일상화된 것 같다. 런던에선 경찰차가 하루에도 수십 번 사이렌을 울리며 도심을 질주한다. 또 사고라도 난 건가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실제 사건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예방과 경고 차원으로 보인단다.

런던브리지와 근처 시장의 사고 현장엔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꽃과 사진, 메모지가 가득했다. 각국의 언어로 애도와 평화를 염원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희생자들은 '영국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관광객부터 봉사자,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까지 희생자들은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불특정 다수였다. 런던은 인종의 용광로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중 하나다. 호텔 리셉션 직원도 슈퍼마켓 캐셔도 박물관 안내원도 아시아, 아프리카, 아랍, 남미, 남유럽, 동유럽 출신의 여러 인종과 민족이 섞여 있다. 현장학습을 나온 영국 초등학생들도 다양한 피부색을 지니고 있다. 유럽의 선진국, 세계 공용어 영어 종주국인 영국의 수도로서 런던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지구촌의 다른 대도시들도 런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며칠 뒤엔 평범한 한 영국인이 사원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무슬림들에게 차를 돌진한 보복 테러가 발생했다. 그날 오후 소호 거리는 언제나 그렇듯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로 복잡하다. 한 모퉁이에서 거리의 가수가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을 열창한다. 길 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나지막이 노래를 따라한다. "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누군가를 죽일 필요도, 조국을 위해 죽을 필요도 없는, 종교도 역시 없다고 말이죠.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런 곳을 상상해 보세요. 당신은 아마 나더러 몽상가라 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나 혼자만은 아니죠. 언젠가 당신도 나와 함께하길 바랄게요."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 위기가 아닌 데가 없다. 세상은 더욱 좁아지고 우리 젊은이들의 삶의 무대는 과거보다 훨씬 넓어졌다. 상관없는 먼 곳의 일로 치부하기엔 전쟁과 테러, 종교 갈등, 핵무기의 위협, 경제 위기, 난민과 기아 등의 문제들은 서로서로, 그리고 우리와도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 얽히고설킨 정치적 종교적 위기를 극복할 해결책이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아주 천천히, 그리고 대체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은 진보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날이다. 그것이 아직은 노랫말처럼 상상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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