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자궁암 앓는 새터민 김수정 씨

입력 2017-06-27 00:05:11

네 아이 옷 한벌 사 주겠다 약속했지만…

김수정(가명
김수정(가명'38) 씨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자궁암을 앓고 있는 수정 씨는 아픈 몸으로 네 아이를 돌봐야 한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김수정(가명'38) 씨는 "그저 네 아이와 편하게 살길 바랄 뿐이었는데…"라고 읊조리며 눈물을 흘렸다. 김 씨의 남편은 지난 4월 경찰에 붙잡혔다. 그날 밤 남편은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상태로 김 씨의 어머니와 아이들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며 LPG 가스 호스를 뽑았다. 그러고는 "누군가 우리 가족을 죽이려 한다"며 스스로 경찰에 신고했다. 수정 씨는 체포되는 남편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김 씨는 "남편이 구속된 후 정말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그는 수개월 전부터 혈뇨와 부종에 시달리고 있다. 가계에 보탬이 되려고 음식점에 취직했지만 다리가 너무 부어 사흘 만에 그만뒀다. 견디다 못해 받은 건강검진에서 김 씨는 자궁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신장 상태도 좋지 못했고, B형 간염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정밀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가야 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요. 의사가 저에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할까 봐 너무 무서워요."

◆탈북했지만 연이은 고생길

김 씨는 북한이탈주민이다. 지난 2003년 목숨을 걸고 탈북했지만 조선족 브로커의 사기로 중국의 한 가정으로 팔려갔다. 브로커는 김 씨를 성폭행했고, 첫째 딸(14)을 임신했다. 임신 7개월에 김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다. 당시 후유증으로 첫째 딸은 한쪽 눈이 실명된 상태로 태어났다. 김 씨는 중국에서 둘째 아이(9)를 낳은 후 두 아이를 남겨둔 채 지난 2010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코리안 드림'은 먼 나라 얘기였다. 이듬해 북한이탈주민 남성과 결혼했지만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김 씨는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렸고,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남편은 김 씨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급기야 탈북해서 함께 살던 김 씨의 친정어머니도 폭행했다. 6개월 만에 이혼했지만 김 씨의 배 속에는 셋째 아이(6)가 자라고 있었다.

이혼 후 우울증에 시달린 김 씨는 2년간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중국에 있던 첫째와 둘째 아이를 데려와 식구는 다섯으로 늘었다.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카드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빚더미에 눌린 김 씨는 친구가 운영하는 다방으로 일을 나갔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다행히 남편은 김 씨네 다섯 식구를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열심히 일해서 우리 가족 모두를 먹여 살리겠다고 힘을 주던 사람이었어요. 남편과의 사이에서 넷째 아이(2)가 태어나 식구가 7명으로 늘었죠."

◆아픈 몸으로 네 아이 키워야

김 씨가 카드빚에 시달리자 남편은 사채를 써서 김 씨의 빚을 갚았다. 원금 1천만원에 이자만 한 달에 100만원에 육박했다. 남편이 공사장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도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기도 힘들었다. 현재 김 씨네 식구는 정부 지원금 150만원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매일 똑같은 옷만 입는 아이들한테 '옷 한 벌 사주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사채 이자를 갚고 월세를 내면 통장이 바닥나요."

겨우 일자리를 구했지만 심하게 붓는 다리 탓에 오래 버티지 못했다. 자궁암 진단을 받은 김 씨는 1주일간 앓아누웠고 우울증은 더 심해졌다. "더 살고 싶은 욕심이 없어요. 이대로 죽어버릴까 싶다가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밖에 나가 구걸이라도 해야 하는데 싶고…." 아픈 김 씨를 대신해 어머니가 어린 넷째를 돌본다. 중학생인 첫째 딸은 식사 준비와 청소 등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김 씨는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면 노모와 네 아이가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고 했다. "첫째 딸에게 '엄마가 많이 아프면 동생들을 데리고 고아원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아이가 소리 없이 울더군요. '엄마랑 헤어지기 싫다'고 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 안아주지도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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