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후손에게 역사를 물려주는 도시가 되자

입력 2017-06-26 00:05:01

인류가 처음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고인돌이 있다. 청동기시대 강력한 권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고인돌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6만여 기 정도가 발견되었는데 그중 절반이 우리나라(남한)에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숫자뿐만 아니라 규모와 형식의 다양성, 그리고 밀집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여서 전북 고창과 전남 화순의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지금은 도시의 급격한 개발로 인해 100여 점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한때 우리 대구는 고창'화순'강화도의 고인돌을 능가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세계 제일의 '고인돌 도시'였다.

우리나라 고인돌을 최초로 조사한 곳도 우리 지역의 중구 대봉동 고인돌군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대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고인돌을 지켰더라면 대구는 지구 상에서 가장 경이롭고 신비로운 도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 대구는 전 세계 인류 문화의 상징처럼 될 수 있었던 위대한 '고인돌 역사'를 잃어 버렸다.

어디 고인돌뿐이겠는가? 세계 최대였던 비슬산 암괴류는 공원 조성 등 여러 차례의 공사 과정에서 훼손되고 잘려나갔으며, 경상감영의 위세를 자랑하던 대구읍성은 헐리고 그 자리엔 현대식 건물이 채워졌다. 대구읍성의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대구읍성의 제일 큰 문이었던 영남제일관을 중건했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망우당공원에 생뚱맞게 자리하고 있어 요즘은 대구읍성의 역사를 아는 이조차 드물다.

그뿐만 아니다. 이젠 역사적 장소조차 기억 속에서 잊혀 간다. 한때 2'28 민주운동 당시 집결지였던 명덕네거리에는 그 정신을 잊지 않으려는 이들이 세운 2'28기념탑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류공원 한쪽으로 옮겨져 장소가 가진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모두 현대적 개발을 위해 도시의 정신과 역사를 등한시한 결과다.

심지어 최근 역사교과서에서조차 대구와 대구인의 역사가 소홀히 대접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국채보상운동이 단순히 금연운동에서 촉발된 것으로 왜곡해 놓았고, 1946년 지역에서 발생한 10월 항쟁의 경우 식량 문제로 인한 좌익의 소요 사태로 왜곡해 무고한 민간인 피해를 가리고 있으며,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민주운동'에 대해서는 2'28이라는 정확한 명칭조차 쓰지 않고 있다.

이렇듯 우리 스스로도 대구의 역사와 정신을 지키는 데 소홀했고, 타인으로부터도 초라한 대접을 받고 있다. 대구는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다른 어느 도시보다 많은 기여를 해왔다.

대구라는 지역에서 살아온 삶의 족적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대구 정신으로 남았다. '명예를 존중하고 시대를 앞장서 실천하는 선구자적 기질'로 대표되는 대구 정신은 이 나라를 선도하고 민족의 삶을 이끌어 온 선조의 영광스러운 역사이자 후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보배다.

그렇지만 대구 정신을 대변하는 대구 역사는 온갖 오류와 역사적 왜곡 속에서 상처받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후손들이 이러한 잘못을 그대로 두거나 되살리지 않는 것은 지역의 자존심에 먹칠하고 시민정신을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부터라도 대구 역사와 대구 정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잘 가꾸어진 도시만큼이나 잘 지켜온 대구 문화와 정신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역사와 시민정신을 어어 받지 못한 도시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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