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한미 정상회담, 조급하면 진다

입력 2017-06-24 00:05:01

서울공고·경희대(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전 미 연방 변호사. 현 MBN시사스페셜 진행자
서울공고·경희대(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전 미 연방 변호사. 현 MBN시사스페셜 진행자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메시지가 화제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북한 문제를 도우려 했던 시진핑 주석과 중국의 노력을 고맙게 생각하지만 먹히지 않았다"면서 "적어도 중국이 시도했다는 것은 안다"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진의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대중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미국이 직접 북한을 다루겠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왔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메시지라는 혹평도 상당하다. 이어진 보도는 메시지의 효과를 입증한다.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교안보대화에서 양국은 자국 기업들이 북한 핵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유엔 제재 대상에 오른 기업들과 사업을 못하게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자 제재 가능성' 경고에 놀란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기로 한 모양새다. 사람들 편한 대로 해석되는 메시지를 내놓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다.

노련한 사업가 출신 트럼프 대통령을 순수파(?) 문재인 대통령이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 대선에서 알려졌다시피 트럼프 대통령은 탈세(혹은 절세) 등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반면 인권변호사 출신의 문 대통령은 진정성 있는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 미묘한 순발력이 필요한 협상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객관적인 상황도 한미 정상회담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문제로 속이 탄다. 러시아 스캔들로 인해 특별검사의 조사를 받을 처지다. 실현은 어렵지만 탄핵 얘기까지 나오는 중이다. 북한에 억류되었던 오토 웜비어의 사망도 본인의 말처럼 치욕스럽다. 북한 정권에 시원한 한 방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릴 것이다.

반면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강조한다. 북핵 폐기라는 전제를 달고 있지만 평양 방문, 북한에 대한 압박과 대화 병행 노선을 숨기지 않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과거 정권 10년과는 다른 북핵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주된 요인일 것이다. 진보 진영을 비롯한 지지층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50여 일 만에, 역대 가장 이른 시기에 한미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남북관계에서 과거 정권과 다른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려는 의욕 때문일 것이다. 미국 내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불안하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을 문 대통령이 제대로 된 준비 기간도 갖지 못한 채 만나는 게 큰 불안 요인이라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의 가장 긴요한 성공 비결은 따라서 다른 데 있지 않다. 서두르거나 조급하지 않아야 한다. 남북 문제는 우리가 주도해야 하고,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논리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한미 정부 모두 아직 확고한 대북정책이 수립된 상황이 아니다. 양국 정부 구성원들도 서로 낯선 처지다. 신뢰 관계도 형성되지 않은 터에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별일(?)이 없다면 앞으로 한미 정상이 만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8차례나 만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상견례, 탐색전 정도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첫술에 배부르랴',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조급함을 경계하는 조상들의 경구이다. '뜨거운 두부는 서두른다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중국 속담도 있다. 유대인들은 협상에서 조급함을 가장 금기시한다. 조급하면 진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일이다. '비둘기처럼 순수하되, 뱀처럼 지혜롭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모토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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