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나라에는 맹상군(孟嘗君)이요
조선 대구달성에는 수봉공(壽峯公)이라
맹상군에게는 수많은 식객(食客)이 들락거렸고
수봉공에게는 수많은 책객(冊客)이 드나들었네
중국 전국시대에는 이른바 전국사군자(戰國四君子)라고 하여 당시 천하를 풍미했던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초나라의 춘신군(春申君) 등 넷 걸출한 위인이 있었으니 그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문구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3천 식객(食客)을 거느린 맹상군'이라는 표현이다. 제나라의 재상을 지낸 맹상군은 성정이 걸팡지고 인간관계가 여간 활달하지 않아 그의 집 문전에는 항상 수천의 식객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대구 달성 화원 인흥리(仁興里)에 소재하는 남평문씨세거지(南平文氏世居地)는 목화씨로 유명한 문익점의 18대손 문경호(文敬鎬)가 처음 터를 닦고 후손 후은(後隱) 문봉성(文鳳成) 대에 크게 부를 일구어 지금의 토대를 마련했다. 인흥마을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광거당. 수봉정사는 주로 수봉(壽峯) 문영박(文永樸'1880~1923)이 조성한 건물로 현재의 인흥마을이 있기까지는 인흥마을 중흥조라 할 수 있는 수봉공 문영박의 역할이 매우 컸다. 처음에는 문중 자제들의 학문과 교양을 닦던 수양 공간으로 쓰였던 광거당과 수봉정사는 나중에 이것이 크게 확대되어 인수문고(仁壽文庫)로 발전하여 일만 권의 진귀한 장서를 갖추게 되자 희귀 도서를 빌려보려는 지역은 물론 전국의 유명한 학자 문인들이 모여들어 책객(冊客) 신세를 졌는데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는 명문 거족들의 사회봉사 풍조의 계기를 마련하는 동기가 되어 이로 하여 크게 문세(門勢)를 떨쳤다. 남평문씨인흥세거지는 고려 때 고려왕조의 창업공신이자 삼중대광벽상공신으로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진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한다.
시집 「대구」 6집 『동화사 부도암의 홍매법문』
( 오성문화 2016)
*책객(冊客): 옛날 관아에서 문서나 회계처리를 담당하는 관리를 책객이라고 하였지만 여기서는 밥을 얻어먹는 사람을 식객(食客)이라 하였으니 여기에 빗대어서 책을 얻어보는 사람을 책객이라는 의미로 필자가 만들어낸 말이다.
*걸팡지다: 운신(運身)하는 선이 굵고 넉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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