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世事萬語] 최저임금 만원

입력 2017-06-21 00:05:00

"시간당 최저임금 만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역대학 인문계 교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은 당황했다. 질문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입장에서 현실적 부담이 크겠지요. 만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거나 학비를 보태는 청년들과, 회사에서 퇴출을 앞두고 전전긍긍하는 장년층에게, 또 생활고를 겪고 있는 노년층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열심히 일하면 한 달에 200만원 정도는 벌 수 있으니까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 교수는 말했다. "그런데 우리 학교 학생들 중 상당수는 최저임금이 그들이 사회에 나가 받을 수 있는 생애 최고임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라니! 오늘날 대한민국을 사는 청년들의 절망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새삼 충격적이었다. 우리 사회가 '최저임금 만원'에 대한 논의를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는 다른 것 같다. 문재인정부가 2020년 최저임금 만원을 '일자리 100일 계획 주요내용'으로 발표하자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집권 초기 서슬 퍼른 위세 탓에 '찍!' 소리조차 숨죽이며 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속내는 타들어간다.

편의점과 각종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최저임금 만원이 되면 아르바이트생 수입이 점주보다 더 낫다면서 "점포를 때려치우고 내가 아르바이트로 나서겠다"는 반응까지 보인다. 실제로 분석한 통계를 보니 이 같은 주장이 허튼소리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점주들이 점포를 접고 찾아 나설 아르바이트 자리 자체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미 무인편의점이 등장했고, 셀프주유소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인건비를 견디지 못하는 동네 치킨가게는 폐업하거나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부부나 가족이 함께 운영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거시경제지표로 볼 때 우리나라는 최저임금 만원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는 주장이 있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사회는 빈익빈 부익부의 불균형이 극심하며 '최저임금 만원'의 수혜자나 부담자가 모두 빈익빈 약자 쪽에 있다.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정책이 또 다른 약자를 괴롭혀 결국 다 같이 못사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각종 사회적 불균형에 대한 혁명적 개혁이 필요하고, 그 성과에 발맞춰 다양한 문제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성급함은 자칫 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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