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폭염에 속타는 경북] 타들어가는 논·밭…더 애타는 농심, 뾰족한 水는 없고…

입력 2017-06-20 00:05:00

5월 강수량 평년의 30%, 비 소식도 감감

경북지역 논바닥이 가뭄 장기화로 거북등처럼 갈라지자 지방자치단체들이 소방차까지 긴급 투입해 물을 대고 있다. 19일 오후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서 포항남부소방서 연일119안전센터 대원들이 소방차를 동원해 농업용수를 비상 공급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경북지역 논바닥이 가뭄 장기화로 거북등처럼 갈라지자 지방자치단체들이 소방차까지 긴급 투입해 물을 대고 있다. 19일 오후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서 포항남부소방서 연일119안전센터 대원들이 소방차를 동원해 농업용수를 비상 공급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가뭄이 심상치 않다. 5월 초순만 해도 경북지역 주요 댐 및 저수지의 저수율이 예년 대비 그다지 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일부 높은 곳도 있어서 농사에 큰 지장이 없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우선 비가 너무 오지 않았다. 5월 한 달 전국에 내린 비는 평균 29.1㎜로, 평년 103.4㎜의 30%에도 못 미쳤다. 경북에는 올해 1월부터 이달 18일까지 174.7㎜의 비가 내려 평년 328.2㎜의 53% 수준에 그쳤다.

문제는 앞으로 1주일 내에는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얼마나 비가 내릴지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짝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더 타들어간다. 어떻게든 가뭄을 이겨보려는 농민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까지 10여 일이 남았지만 낮 최고기온이 32.8℃까지 오른 19일 오후 2시 포항 남구 대송면 장동리 김모(54) 씨의 논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흰 속살을 훤히 드러냈다. 인근 장동지와 공수지'홍계지는 바닥을 드러냈다.

일대에 땅을 파 만들어 놓은 관정은 장동리'홍계리 등 극심한 가뭄을 호소하는 35㏊에 물을 대기는 역부족이다. 이런 탓에 농민 10여 명은 자기 논에 물을 대는 순서를 기다리느라 하루하루 애가 탄다.

김 씨의 논은 벌써 수일 전에 물을 댔기에 차례가 돌아오려면 한참이 남았다. 이전에 받은 물은 땡볕에 모두 증발해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논에 내려가 끝부터 말라가는 벼 잎사귀를 만지던 김 씨는 "하늘도 무심하다. 해마다 이렇게 가뭄에 고생시켜 먹고살기 힘들게 하느냐"고 원망 섞인 말을 내뱉었다.

이날 예천 하리면의 한 옥수수밭에서도 가뭄과의 싸움이 벌어졌다. 산 아래의 작은 밭에는 수확시기도 되지 않은 어린 옥수수 줄기가 군데군데 노랗게 변해 있었다.

밭 주인 조모(78) 할머니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물을 뿌려보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메마른 밭고랑은 조 할머니가 발을 옮길 때마다 뿌연 연기를 토해냈다. 물을 머금고 적갈색으로 변했던 밭은 32도를 웃도는 폭염 탓에 5~10분이면 금세 하얗게 말라버렸다.

조 할머니는 "손자가 옥수수를 참 좋아하는데 언 발에 오줌 누는 것도 아니고 물을 부어도 금방 말라버리니 막막하다. 비만 온다면 맨발로 춤이라도 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극심한 가뭄이 농촌의 인심마저 메마르게 만들었다. 최근 안동 일부 지역에서는 가뭄 탓에 밭에 물을 공급하려는 농민 간 눈치싸움이 한창이다. 안동 풍천면에서 벼와 들깨 농사를 짓는 김모(65) 씨는 요즘 오전 4시면 잠에서 깬다. 지난해보다 20%가량 줄어든 농업용수 탓에 남보다 일찍 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김 씨가 새벽부터 밭일을 하러 나가기 시작한 건 최근 이 마을에서 농수로 공급 문제로 주민 간 고성이 오가면서부터다.

김 씨는 "농수로로 공급되는 수량이 이전보다 줄다 보니 상류지역 밭에서 물을 공급하기 시작하면 하류는 수위가 낮아져 물 공급이 안 된다"며 "실제로 물 문제로 주민들끼리 싸우는 일도 벌어져 차라리 새벽에 일어나 물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했다.

김천에서도 농사에 쓸 물을 두고 농민끼리 갈등을 빚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천 조마면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는 A(56) 씨는 밭을 끼고 흐르는 도랑물이 하루아침에 끊기자 가슴이 철렁했다. 어떻게 하루 만에 물이 말랐는지 확인해보니 상류에서 도랑물을 막아 버린 것. A씨는 궁여지책으로 대형 물통을 구입해 다소 물 사정이 나은 감천변에서 물을 길어다 쓰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치 못해 과일이 늦자란다. A씨는 "섭섭하지만 어렵기는 모두 마찬가지이고 상류에는 물이 더 부족한 터라 아쉬운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있다"고 했다.

김천 감문면에서는 농업용 암반관정을 두고 주민 간 불협화음이 인다. 이 마을은 김천시에서 제공한 암반관정을 순서를 정해 써왔다.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일부 논이 바짝 말라 마른 흙이 날릴 정도로 가뭄 피해가 생기자 관정 사용 순서를 두고 시비가 생긴 것이다. 한쪽에서는 "피해를 입은 주민을 우선으로 하자"고 하는 반면 일부 주민은 "정해진 순서대로 관정을 쓰자"며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논란은 계속되지만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다. 김천시 관계자는 "가뭄이 심해지면서 물과 관련한 논의에 주민 모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 중재를 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기우제를 지내는 곳도 한두 곳씩 늘고 있다. 칠곡 동명면 송산3리 주민들은 19일 마을 뒤 매봉산 정상 돌탑무더기 앞에서 기우제를 올렸다. 매봉산은 예부터 마을제를 올리거나 달집을 태우던 곳으로, 송산3리 옻밭마을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곳이다. 이날 기우제에 참석한 이들은 말라가는 논밭만큼이나 주민들의 타들어 가는 마음을 하늘에 전하고, 가뭄을 해소할 수 있도록 단비를 내려줄 것을 간절히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