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남주북병

입력 2017-06-17 00:05:00

동네 특성을 거론할 때 흔히 예로 드는 성어가 있다. '남주북병'(南酒北餠). 조선시대 서민이 모여 살던 서울 남산 밑 남촌에서 빚은 술은 맛이 좋아 호평을 받았다. 현재 충무로와 회현동 1가 일대다. 반가가 모인 청계천 북쪽의 북촌은 떡이 유명해서 이 말이 나왔다.

옛 서울 이야기를 담은 기록을 보면 동네마다 주민 생업이 달랐다고 한다. 목덜미가 검으면 '왕십리 미나리 장수', 이마가 까만 사람은 '마포 새우젓 장수'라는 말도 흥미롭다. 미나리꽝이 많은 왕십리에서 도성으로 미나리를 가져와 팔려면 햇빛을 등지기 때문에 목덜미가 까맣고, 새우젓이 들어오는 마포는 해를 마주해 이마가 검게 타서 나온 호칭이다. 명륜동 앵두 장수, 신수동 솥 장수, 이태원 복숭아 장수 등에서도 동네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호칭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산업화와 1970년대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흩어지고 지역색이 크게 옅어진 탓이다. 대신 주거 목적과 이유에 따라 새 동네가 형성되는데 명문 학교가 대거 이전한 서울 강남이 대표적이다. 강한 교육열 때문에 '8학군' 별칭까지 얻었다.

최근 경기와 서울교육청이 외국어고'자율형 사립고 폐지를 추진 중이다. 1984년 시작된 외고는 전국에 31개교, 자율 교과과정 운영을 이유로 2010년 도입한 자사고는 모두 46곳이 있다. 그런데 학생 경쟁을 부추기고 학교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폐지를 공약하자 일선 교육청이 깃대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외고와 자사고를 없애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과학고나 우수 일반고가 많은 강남 8학군으로 몰리는 풍선효과 때문이다. 여기에는 위장 전입과 아파트값 폭등 문제도 깔려 있다. 게다가 대구 등 지방 외고와 자사고로 학생이 몰릴 가능성까지 걱정한다.

대구에서 '수성 불패'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입시 성적 좋은 고교와 학원이 몰려 있어 위장 전입은 물론 타지역 아파트값은 다 내려도 수성구만큼은 요지부동이어서 나온 말이다. 이런 과도한 교육열을 식힐 수 있다면 외고 등의 폐지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앞뒤 재보지 않고 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다. 정부가 교육행정을 책임질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한다니 시간을 두고 종합 검토해 결정하는 것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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