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삶의 태도가 광적인 것으로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쎄/변미영
어느 분의 서재에서 '유산수' 한 점을 보았다. 목판과 서양화를 접목시킨 독특한 기법에 산과 물, 새, 꽃이 조화를 이룬 산수화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이가 느껴지고 작품에 들인 공이 느껴져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작품이어서 '어떤 분일까?' 하고 보는 내내 궁금했었다.
30년 동안 그림만 그렸다는 저자가 낸 이 책은 자신의 그림과 옛 선조들의 그림을 분류하여 감상하기에 좋다. 특히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곁들여 재미를 더했다. 어떤 이는 한길만 가기도 벅차다는데 저자는 자신의 분야인 그림 이외에도 글을 맛깔나게 썼다. 유(遊) 山水, 휴(休) 山水, 화(花) 山水, 락(樂) 山水로 총 4장으로 분류한 이 책은 바쁜 현대를 사는 독자들이 책 안에서나마 山水와 놀고, 쉬고, 꽃놀이를 하고, 즐기라는 배려인 듯하다.
"청광(淸狂)은 마음이 깨끗하고 청아한 맛이 있되, 그 하는 짓이 일상 규범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고상한 삶의 태도가 광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이런 청광들의 행동은 일반인들의 눈에는 약간 미친 것처럼 보인다." 이런 광적인 화가로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를 비롯해, 중국의 화가 서위, 조선 후기 산수화와 인물화에 능했던 최북 등이 있었다.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살바도르 달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광기를 지닌 천재 화가였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또한 청광을 인간의 자유의지를 대변해준다고 확대해석하고 있다. 뭔가를 제대로 해보려면 미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색한 변명처럼 게을러서 또는 바빠서라고 하지만 진정 미친 듯이 빠지지 않고는 뭔가를 제대로 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옛사람의 작품을 통해서도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화가로서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토로하고 있는데 "예술 행위는 여성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요, 남성이라서 하는 것도 아니다. 예술은 인간으로서 근원적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의 수단이다"이라고 말한다. 예술 활동 중에 부딪히는 경제적인 부분이나 남녀 성차별적인 시선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떤 이는 이런 발언을 자기 홍보 수단으로 삼고 어떤 이는 아무 생각 없이 뱉어내기도 하는데 작품 활동 이전에 내면을 먼저 다스려야 하겠다. "예술가들은 대쪽 같은 치열한 삶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다." 여기서 소개한 최북, 모딜리아니, 장승업, 미켈란젤로, 마르셀 뒤상, 보헤미안에게서 예술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이 무엇인지를 엿본다. '그림=돈'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산수를 현대적 기법으로 그려내 자신의 화풍을 이어가는 저자의 그림 한 점을 두고 이 책에서 소개한 방법으로 잠깐이나마 완상(玩賞'어떤 대상을 취미로 즐기며 구경함)도 하고 와유(臥遊'산수화를 감상하다)도 했다. 그러다 그림에 대한 소유욕이 생길 즈음 연암 박지원의 목소리를 듣는다. "감상할 줄 모르고 단지 수장만 하는 자는 부유하지만 그 귀만 믿는 자이고, 감상은 잘하되 수장을 못하는 자는 가난하지만 그 안목을 저버리지 않는 자다." 그리하여 나는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고 감상하는 山水에 자족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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