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내 마음의 안식처] (10)박한 화가-문경 영강

입력 2017-06-16 00:05:01

플라타너스 아래는 청량했고 영신숲 품은 영강은 풍요로웠죠

호박 작가 박한의 마음속 안식처는 문경 영강과 영신숲이다. 그곳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쉼터이자 작업실이었다.
호박 작가 박한의 마음속 안식처는 문경 영강과 영신숲이다. 그곳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쉼터이자 작업실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좋았다. 행복했다. 점촌의 터줏대감인 돈달산이 민둥산인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그림을 그리는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택한 돈달산이었다. 민둥산이었지만 넉넉한 곳이었다. 전경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다. 점촌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점촌시내 동쪽을 흐르던 영강(潁江), 그리고 영강에 쏙 안긴 영신숲은 열댓 살 먹은 소년에겐 자연이 준 작업실이었다.

'호박 작가'로 알려진 서양화가 박한. 그에게 영신숲은 아무렇게나 자리 잡고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로, 영강은 제멋대로 흘러가던 물줄기로 각인돼 있었다. 그의 엉덩이에 기꺼이 자리를 내준 플라타너스 아래는 청량했고, 푸른 물결이 보일 듯 말 듯 굴렁대던 강물은 풍요로웠다. 영신숲과 영강은 사시사철 모습을 바꿔가며 기꺼이 모델이 돼 주었다. 그림만 그리고자 학업을 그만둔 소년에게 '영혼의 쉼터'라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작업실이자 쉼터이던 영신숲과 영강은 여전히 그 자리다. 다만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영신숲은 소나무숲으로 변신했다. 영신숲은 세련되게 단장됐다. 소나무 아래 잔디가 퍼져 있고, 띄엄띄엄 제각기 영역을 갖고 있었다. 가꾸어 놓은 티가 확연했다. 그림으로 그리면 지금도 훌륭한 피사체가 되어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겐 인공적인 멋이 더해진 숲이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실 그에게 '호박 작가'라는 별칭을 안겨준 것은 호박이었다. 그에게 유명세를 안긴 건 그림, 특히 호박 그림이었다. "둥근 호박만큼 자연적인 게 없잖아요"라는 그의 말에서 문득, 생태학자가 쓴 두툼한 서적 한 권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26세 때부터 40년 가까이 오로지 호박만 그려왔다는 사실도 겹쳤다. 호박은 자연적 아름다움의 대상이었다. 그림을 갓 그리기 시작했던 소년 박한에게 각인된 영신숲과 영강의 모습이 호박으로 옮아간 것이었다.

차분차분 그의 말을 듣는 동안 영강 둔치에 올곧게 조성된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 탄 이들은 시원스레 내달렸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 구불구불해진 길이 아닌, 이쪽으로만 다니시라고 친절하게 그어놓은 길이었다. 그제야 자연적인 생동감이 없어 아쉬운 길로 보였다. 그가 그려온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놔두면 아름다움을 풍기는 것들이었고, 그가 그린 것은 그에 대한 찬사와 감사였다.

옛날을 회상하라는 배려일까. 플라타너스 나무 굵은 줄기들이 숲을 이루던 자리엔 제법 굵은 플라타너스 한 그루만 남아 있다. 얼마나 됐을까. 한참을 올려다볼수록 한여름 뙤약볕을 막아주던 플라타너스 넉넉한 이파리의 기억만 작가에겐 오롯했다. 줄기의 둘레만으로 얼마나 세월이 지났는지 알 순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동네 어르신의 이마 주름만으로 그가 헤쳐 온 세월을 가늠하기 쉽지 않듯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그는 당연히 우리 동네에 있었고, 있어야 했던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영신숲도 영강도 화가 박한에겐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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