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선이 만난 사람] 오미영·윤영미 전 아나운서

입력 2017-06-16 00:05:01

"말하기·글쓰기 공부, 아나운서 안 돼도 헛되지 않아"

오미영(왼쪽) 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 교수. 윤영미(가운데) 프리랜서 아나운서. 황유선 교수. 사진=이무성 객원기자
오미영(왼쪽) 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 교수. 윤영미(가운데) 프리랜서 아나운서. 황유선 교수. 사진=이무성 객원기자

아나운서는 전 세계 몇 나라에 없는 직업이다. 정확한 발음은 물론 지성과 미모까지도 갖춰야 하는 데다 해마다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니 아나운서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나운서는 분명 연예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미인이지만 정돈된 분위기와 신비감도 느껴지기에, 아나운서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언제나 뜨겁다. 무척 거리감이 느껴지는 아나운서는 사실 방송사의 직원, 즉 보통의 회사원이다. 회사의 아나운서 직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두 주인공을 만났다.

-방송사 아나운서 직을 과감히 내려놓은 계기가 궁금하다.

▶오미영 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 교수(이하 '오'): 일반인들은 아나운서가 직업치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나운서를 하니 얼마나 좋겠느냐는 질문을 하지만 아나운서 역시 현실적인 직장인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여자 아나운서에 대한 시선이 답답했다. KBS에서 여자로서만 너무 머물러야 하는 환경도 불만이었다.

▶윤영미 프리랜서 아나운서(이하 '윤'): 나이 50이 되면서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회사원으로서 아나운서는 안정된 직업이긴 한데, 여자 아나운서가 40, 50세를 넘으면 맡을 프로그램이 없다.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젊고 예쁜 아나운서들을 선호한다. 내가 할 방송이 없더라. 오히려 SBS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좀 더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아나운서로 입사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아나운서는 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

▶윤: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이미지는 좋으니까. 일단 멋있지 않나! 예쁜 옷 입고 텔레비전에 나오고 유명해지고 지적으로 보이고 대중의 관심도 받는다.

▶오: 아나운서 업무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대학에서 요즘 학생들을 보면 아나운서를 예전보다 덜 선호한다. 아나운서는 일단 되기가 어렵고, 지상파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다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안다. 지상파 3사만 있을 때에 비해 아나운서의 위상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여전히 아나운서는 할 만한 직업인가.

▶오: 아나운서를 꿈꿔도 좋다고 본다. 의사소통 능력을 요구하는 대기업이 많아서 대학에서도 의사소통센터를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어려서부터 의사소통 역량을 길러주고 있다. 아나운서가 된 사람들은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직업으로 이직하기에도 중요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확장이 가능한 직업이다. 반드시 아나운서가 최종 목표는 아니어도 다른 일을 구할 때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윤: 교수로도 가고 연기자도 한다. 청와대 부대변인도 한다. 정치도 하게 된다. 아나운서는 훌륭한 바탕이 된다. 아나운서 지망생들을 많이 가르쳐 봤는데, 그들은 아나운서가 안 되면 죽을 것처럼 얘기한다. 굳이 아나운서가 안 되더라도 '아나운싱'을 배우는 것이 헛되지는 않다.

-젊고 예쁜 아나운서들이 각광을 받기 때문에 힘들게 입사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밀려나는 것 아닌가.

▶오: 아나운서는 큰 범위에서 연예산업현장에 속한다. 아나운서는 재능, 즉 기프트를 가지고 직업을 구한 사람이다. 아나운서가 프로그램에 참여해서는 순발력과 창의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기본이 비슷해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발휘돼야 한다. 예전에 이계진 선배하고 프로그램을 많이 했는데 이계진 선배가 성공한 이유는 순발력 덕분이다.

▶윤: 똑같은 방송 대본을 가지고도 누가 어떻게 소화해내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다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중년, 백발에도 활약하는 여성 앵커들이 있다.

▶오: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그럴 가능성이 좀 있다고 본다. 다만, 미국도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 그가 프로그램을 맡는 동안 다른 후배들은 그만큼 활동을 못했다. 또 다이언 소여(Diane Sawyer)가 뭘 하면 그 기간에 역시 아무도 못 했다. 결국 이 직종은 스타가 살아남는 것이다. 스타는 희소성을 가지는 존재이며 누구나 스타가 되지는 못한다. 아나운서는 이런 산업영역에 속해 있다.

-최근 아나운서는 연예인과도 경쟁하고 기자들이 있는 보도국에서도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다.

▶윤: 내가 1985년에 아나운서가 됐는데, 그때도 아나운서는 금방 없어진다고 얘기했었다.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존재한다.

▶오: 아나운서라는 이름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지만 몇십 년 전 아나운서와 지금의 아나운서는 다르다. 예전엔 방송국에 입사해서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 동안 근무하고 나오는 사람이 아나운서였다면 지금은 프리랜서까지 모두 포괄해야 한다. 방송사 내에서는 '프리랜서, MC, 리포터, 아나운서'로 세분화 하지만 대중에겐 그들이 모두 아나운서다. 아나운서를 특별하게 분류해 스스로 그 영역을 제한하지 않으면 아나운서 직종은 계속 확장되고 유지될 것이다.

▶윤: 소위 '아나운서의 일'을 고수하는 것을 탈피할 때이다. 아나운서의 영역이 불분명해졌다. 기존의 아나운서들이 했던 많은 부분을 연예인과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 직업인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오: 어쨌든 탤런트(재능)를 가지고 하는 활동은 그럴 수밖에 없다. 무한 경쟁이고 언제든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다. 근데 회사에서 아나운서를 직원으로 뽑았기 때문에 이런 구조랑 잘 맞지 않는 것이다.

-방송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금의 방송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오: 대형 슈퍼마켓을 생각해보자. 온갖 물건이 진열된 곳에 가서 우리는 상품을 산다. 물건이 좋고 다양하면 쇼핑을 하러 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안 간다. 과거에는 방송사가 그냥 틀어주면 다 시청하는 환경이었으나 지금은 프로그램을 유통하고 마진을 취하는 형국이라고 보면 된다. 얼마나 좋은 프로그램을 확보하는 지가 관건이다.

▶윤: 전 국민의 방송인 시대이다. 파워 블로거들의 영향력도 세졌고 1인 방송을 통해 유명인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방송사의 위력은 축소됐다.

-최근 방송 저널리즘을 어떻게 보는가.

▶오: 저널리즘이라면 뉴스 영역이다. 예전에는 뉴스가 전문 인력의 생산물이었다. 게이트키퍼는 특정한 사람이었고 각 방송사의 밤 9시 뉴스는 막강한 정보원이었다. 지금은 SNS를 비롯해, 너무 많은 곳에서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뉴스가 개인의 구미에 맞게 세분화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카드뉴스나 클립으로 돌아다니는 형태의 뉴스를 소비한다. 그들에게 뉴스 전달 창구는 페이스북이다. 이미 수용자 스스로 뉴스 큐레이션을 하는 셈이다. 그러니 지상파 방송 뉴스는 예전 방식을 고수해야 할지 말지 완전히 길을 잃었다. 방송사가 만들어서 삼사십 분 길게 전달하는 형태의 뉴스는 앞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서 국어 파괴 문제가 제기된다.

▶윤: 안 좋은 추세지만 방법이 없다고 본다. 심지어 '장난 없다' 이런 말도 자막으로 나온다.

▶오: 사실 국어 파괴는 방송사의 인력 구조나 비정규직의 문제와 더 관련이 깊다. 자막을 기자나 PD가 챙기지 않는다. 주로 막내 작가나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이 챙긴다. 정작 자막과 언어를 필터링하는 그 작업의 연결고리가 끊겨 있다. 전문가 집단이나 책임질 사람이 없다. 생각을 해야 할 사람이 있을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방송사의 예산 절감 문제가 포함돼 있다. 그러니 인력 처우라든지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를 뉴스로 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비정규직이 있는 곳이 방송사인데 무슨 비정규직 문제를 뉴스로 내보내겠는가. 방송사에는 조명, 음향 등 일용직 파견직 스태프들이 많다. 이런 인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높은 품질의 언어 문제 역시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요즘 채널은 아주 많으나 텔레비전에서 볼 것이 없다고도 말한다.

▶오: 이미 젊은 층은 텔레비전을 안 본다. 대학에서도 느낀다. 여러 재미난 콘텐츠가 많아서 '그거 재미있더라'라고 하면 찾아서 본다. 그것도 통째로 안 보고 잘라서 본다. 그렇게 수용자가 세분화되면 적은 수의 수용자를 대상으로 영업해야 하니 방송사의 위기다.

▶윤: 요즘은 좀 심심한 아이템이더라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예능이 인기다. 이제는 너무 자극적인 것보다는 복고풍이나 아날로그적인 움직임이 반영될 것 같다.

-지상파 아나운서는 화려하고 부러움을 받는 직업이다. 행복했었나.

▶오: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나에게 과거는 그냥 과거다. 늘 어제보다 오늘이 좋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나운서를 했던 것은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의 자양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중요하고 귀중한 경험을 했다.

▶윤: 10살 때부터 꿈이 아나운서였는데 그런 면에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아는 부분과 실상은 좀 다르다. 방송사별로 몇십 명씩 있는 아나운서가 다 주목받는 것은 아니며 그 안에서도 잘나가거나 소외되는 아나운서가 있다. 그 속에서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 아나운서 세계에서는 나름대로 레벨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소외된 편이었고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 시점에서 인생을 돌이켜 보면,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오: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보통은 젊을 때가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50세가 넘으니 오히려 그것을 벗을 수 있어서 행복해질 수 있었다. 남들이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여자 나이에 도달하고 나서부터 진짜 여자의 삶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여자에게 전형화된 것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나이가 들고나면 그런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또, 요즘 젊은 여성은 좀 다르다. 그들은 '여자로서' 뭐 이런 말을 싫어할 것 같다. 이런 경향이 궤도에 오르는 것 같아 좋다.

▶윤: 자기의 천성대로 사는 것이 여자로서 행복할 것 같다. 정답은 없다. 예컨대, 죽을 때까지 남자 의존적인 여자라 하더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 반면, 여성성이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여자로서의 특징을 잃고 싶지 않다. 감성적이고 섬세한 면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다. 여자로서의 장점을 유지하며 내적 외적으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이 시대 여성 오피니언 리더로서 자녀를 키우는 우리나라 엄마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오: 여자가 하는 제일 위대한 일은 자식을 키우는 일이다. 사회에 엄청난 기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엄마가 키웠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달라진다. 그러니 아이를 키우는데 주체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녀 교육도 일방적 잣대를 대거나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엄마가 생각하는 행복관을 지켰으면 좋겠다. 엄마들이 더 자신감 있고 개성 있게 살아야 한다.

▶윤: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주관적인 직관을 키워주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면 된다. 엄마의 주관대로 아이를 키우지 말로 아이의 천성을 잘 살펴서 발전시키는 배경이 돼 주는 게 엄마의 몫이다. 가능하다면, 경험도 여행도 많이 함으로써 자녀 스스로 천성을 깨닫고 발전하도록 엄마들이 연의 끝을 잡고 자녀를 훨훨 날게 해주자. 무관심이 아니라 물꼬를 틔워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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